나의 이야기

레오 신부님

tlsdkssk 2011. 8. 19. 09:57

먼젓번에 밝혔듯 레오 신부님에게 나는 평생에 가장 힘든 보속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분은 지적인 준수한 외모에 음성도 편안하고 사람을 끌려들게 하였으며

박사학위도  지닌 학구파 사제이기도 했다.

2년 여 그 신부님의 모습을 보아왔지만, 

그 분이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낯을 찡그리는 모습을 뵐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성당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비교적 자주 만날 수 있었기에 그 신부님에 대한 관찰이

용이했음에도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분이 물에 술 탄듯 술에 물 탄듯 하셨나 하면 그건 물론 아니다.

내 고해성사에 대한 그 분의 태도에서 불 수 있듯 그 신부님은 신자들의 잘못에 대해

매우 준엄하셨다. 한데도 신부님의 목소리엔 전혀 감정이 실려있지 않고

때론 웃음마저 어려있었다. 나직하되 속을 깊이 후벼파는 꾸지람을 하셨다고나 할까.

그즈음 우리 본당에서 큰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웬 아이가 길에서 현금 천만원(가량이었다고 기억한다)을 주웠다.

아이의 집은 가난하였다. 아이는 그 돈을 경찰에 신고하여

돈은 잃은 이에게 돌아갔고 아이는 얼마간의 사례금을 받았는데, 아이는

그 돈의 일부(였는지 전부였는지는 모르나 일부였을 거라고 짐작된다)를

다른 가난한 이들에게 내놓았다고 한다.

그 사건을 전해들은 신자들은 웅성거렸다.

주운 돈이 현금인데다가  거금이었고  아이의 집은 가난하였기에 그 행실을 놓고 칭찬이 자자헀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신부님은 강론 중에 그 아이에 대한 얘기를 꺼내셨다.

이런 요지의 말씀이었다.

거리에서 주운 남의 돈을 돌려 준 사실을 놓고 왜 그리 흥분들을 하는가. 그건 당연한 일이므로

마땅히 했을 일을 한 것 뿐이다. 하지만 그 아이가 사례금 받은 것으로 다른 가난한 이를 도운 것은

참으로 칭찬 받을 일이다, 라고. 

 

나중에 들으니 그 신부님은 술(특히 양주)을 아주 좋아하셨다고 한다.

거의 매일 드셨다는 얘기도 있다.

그래 선가 그 신부님은 60 초반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그 신부님의 강론을 매우 좋아하였고 신부님의 인품을 존경하였다.

특히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면서도 따스함을 잃지 않는 그분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수줍음이 많은 탓에 한번도 신부님께 말을 건네본 본 적은 없었다.

잠시 머물러 살던 상도동 동네를 떠나던 마지막 주일날 나는 신부님께 내 글이 실린 수필지 한권을 드리며

그 안에 짧은 편지를 넣었다. 신부님께 참으로 많은 걸 배우고 간다고.  

새 동네로 이사한 후 어느 날 신부님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신학생 이후 처음 써보는 편지같다고 하셨다. 열심히, 성실히 살라는 덕담과 함께... 

 

해마다 친정 아버지의 산소(용인 천주교 묘지)에 갈 때면 나는 늘 그 신부님의 묘소에도 들러

환화하며 참배하곤 했다.그리곤 혼자 묻곤 한다.

"신부님, 살아 생전 왜 그리 술을 많이 드셨나요?

무엇이 온화하신 신부님에게 술을 마시지 않고는 못 견디게 하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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