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시름시름 하느라 오늘 아침에도 역시나 시름거리고 있는데, 핸펀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가 뜬다.
여보세요? 하니 상대방은 심현숙씨 핸펀이냐고 묻는다. 나는 정중히 "아닙니다."하곤
전화를 끊었다.
이어 전화가 다시 울린다. 또 같은 번호가 뜬다.
상대는 내 목소리를 알아차리곤 다소 민망한 음성으로 묻는다.
"실례지만 이 번호를 언제부터 쓰셨나요? 제가 분명 맞게 걸었는데... 혹시 E여고 나오셨나요?"
발신인의 얼굴은 알 수 없어도 음성이 차분하니 교양이 묻어 나왔다.
나는 이 번호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쓰던 번호라 무슨 착오가 있는가보다 대답하며, 그러나 E여고를 졸업한 건 맞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졸업 연도를 말하며 내 반응을 기다린다. 내가 그 또한 맞다고 대답하며 우리가 동기 동창인가보다고 했다.
그녀는 이내 어투를 해라로 바꾸며 10월에 동창회 합창대회가 있어 그 문제로 전화를 했다고 한다.
나도 해라로 바꾸며 명단에 무언가 착오가 생긴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내 이름은 심현숙이 아니라 아무개라고.
그러자 상대는
"어머, 너 목소리 참 좋구나. 정말 듣기 좋은 음성이다." 한다.
나는 기분이 좋아 "그대도."라고 화답했다.
그녀는 또다시 내 목소리가 좋다고 한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한**이란 동창이었다.
한번도 같은 반을 안 했는지 귀에 선 이름이었다.
그래도 동기동창이란 사실 하나로 이내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자기 키가 작다고 한다.
나는 키가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둘이 또다시 웃었다.
목소리로만 나눈 대화가 그처럼 즐거울 수 없었다.
동창회에 가면 나를 일컬어 '그 철학적이고도 독특했던 애'라며 찾는 애(?)들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동창 모임에 한번도 간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