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 A씨에게 전화가 왔다.
언제 한번 경복궁에서 만나자고 한다.
몇 년씩 소식을 전하지 않다가 나타나는 지인은 몇 곱절로 반가운 것 같다.
그녀로 말하면 나와 같은 모지(母紙)로 등단한 동인도 아니면서 내 글을 읽고 나를 만나보고 싶다며
전화를 해준 수필가 아닌가.
그녀의 글이 시원찮았다면 설렘이 덜했을 것이나 워낙 탄탄하고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인지라 그녀의 전화를 받고 몹시 기뻤다.
나는 남성 팬의 전화보다 여성 팬의 전화가 더 반갑다.
남성의 경우엔 순수성이 다소 의심되나 여성의 경우엔 순도 100%를 믿어도 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용모도 목소리도 수필적이다. 타고난 귀인이며 양반이지 싶다.
"저희 집엔 플라스틱이라곤 없어요."라는 소리를 딴사람에게 들었다면
공주병도 중증이구나, 했을 텐데, 그녀가 그렇게 말할 땐 그저 남다르구나 싶기만 했다.
이번에 만나면 그것부터 물어봐야지.
지금도 플라스틱을 쓰지 않느냐고. 이제는 결혼도 했는데...
누구에겐가 잊혀지지 않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건 기쁜 일이다.
전엔 그녀와 일년에 한번은 꼭 만났었는데, 한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주로 그녀가 먼저 전화를 했었다.
그녀는 한 때 수녀였고, 환속 후 수필가로 등단했고 좋은 신랑 만나 뒤늦게 결혼도 했다.
더위가 한 풀 꺾이면 그녀에게 만날 날을 통보해줘야겠다.
그녀를 만날 땐 나도 귀인 모드로 나가리라. 늘 하고 다니는 운동화에 바지 차림 말고.
아니, 그냥 나갈 테다. 나 답게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