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 典 名 詩 (三)
1) 보름달
송익필
못 둥글어 한이나
둥글긴 더뎌
어찌타 둥글자
이내 기우나?
서른 밤에 둥긂은
단 하룻밤
일생의 뜻한 일도
저러하려니―.
2) 갓 돌아온 제비
이 식
만사가 느긋하니
웃기는 일도 많다.
초당에 봄비 오기
사립문 닫았더니,
뜻밖에도 갓 돌아온
발 너머 제비 녀석
날 보고 ‘왜 닫았냐?’
따지고 드네 그려.
3) 산 길
강 백 년
십리에 인기척 없고
산은 비었는데 봄새가 운다.
중 만나 앞길을 물었건만
중 가고나니 길은 도로 헷갈려….
<평설> 어찌 산길뿐이랴? 인생길 또한 그러한 것을-.
앞 사람들 발자국이 거듭되어 난 길이건만, 길에는 으레 갈림길도 많아, 한번 엇길로 들기만 하면 갈수록 글러만 가는 산길, 인생길!
알 듯 말 듯 알쏭한, 누구에게나 첫 길인 낯선 인생길, 물어물어 가는 길이라지만, 물을 데도 만만찮고 물었는데도 되레 헷갈리는 길, 그 산길 인생길!
4) 사공의 한탄
丁 若 鏞 - 실학자. 茶山. 牧民心書 등 500여권
저서 남김. 稀世의 대 저작가. 천주교도 박해 때 유배되어 학문에 전념.
나는 본디 약 캐던
산중 늙은이
어찌다 강에 와서
사공이 됐네.
서풍 불어 서쪽 뱃길
끊어 놓기에
동으로 되가려다
동풍 만났네.
바람이야 일부러
나를 어기랴?
내 스스로 바람을
아니 따른 탓,
아아, 바람 그르니 내 옳으니
따져 뭘하나?
돌아가 산 속에서
약 캐기나 하려네.
5) 대관령을 넘으며
신사임당 - 율곡의 어머니. 현모양처의 귀감
백발 자모(慈母) 홀로 두고 가는 이 마음을,
대관령 굽이굽이 돌아뵈는 강릉 땅을,
저무는 산 푸름을 덮어 흰 구름이 가리네.
<평설> 늙은 어머니를 두고 떠나는, 출가한 딸의 정곡(情曲)이다.
남달리 도타운 효성이지만, 삼종지도(三從之道)야 어찌 어길 수 있으랴? 지아비가 있는 서울로 떠나가는 심정은 착잡하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이라, 가다간 고개 돌려 보고 또 보곤 하는 출발이기도 하지마는, 대관령 굽잇길, 여태도 어머님은 이 고갯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시려니…
점차 고도가 높아지자 흰 구름이 덮어 내리어 안계(眼界)를 가로 막는다. ‘흰 구름’은 이 이별의 대단원의 막이다. 그것이 가리운 것은, 가까이는 ‘저무는 산의 푸름’이지마는, 멀리는 ‘바라보이는 강릉땅’이요, 아득하게는 ‘떠나가는 이별의 심정’이다. 이리하여, 산의 푸름도 강릉 땅도 이별의 심정도 다 함께 흰 구름 속, 아득히 저물어가는 긴 여운으로 잠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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