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상자

꽃/김수영

tlsdkssk 2008. 9. 17. 19:54




정말 내 이름을 부르지 마시고

나를 찾지 마세요


모­든 작의(作意)와 의지가 수포로 돌아가는 속에 나는 삽니다


나의 허탈하고 황막한 생활에도 한 떨기 꽃이 있다면

어머니

나에게도 정말 꽃이 있습니까


손을 대어서는 아니되는 꽃

결코 아무나 손을 대어서는 아니되는

이 꽃

확실한 현실이여


내가 대결하고 있는 것은 나의 그림자

인생의 해탈을 하지 못하고도

맑게만 살려는 데에 나의 오해와

비극과 희극과

타락 이상의 질식이 있습니다


꽃 아닌 꽃이여

잔혹한 진행이여

벌써 나의 고장이 없어진 지 오래인

내가 다시 내 고장을 찾아야 할 때

나의 이성(理性)은 나의 피부와도 같은 것입니다


이름을 버리고 몸을 떠난지

오래인 나의 흔적을 다시 찾지 마세요


이즈러진 진리여,

어머니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