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남편의 바람기, 잡어? 말어?(펌)

tlsdkssk 2008. 3. 26. 22:06

바람 피우는 듯한 남편, 모른 척할까요, 정신 차리게 해줄까요?

한겨레 | 기사입력 2008.03.26 19:16 | 최종수정 2008.03.26 19:16


[한겨레]

Q 주말 부부입니다. 40대 중반인데도 머리가 허옇던 남편이 얼마 전 머리를 새까맣게 염색하고 들어와서는 제 눈치를 보더군요. 외모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던 그가 최근에 부쩍 늙어 보이는 것에 신경을 쓰는 게 불안해 보였는데 …. 또 지난가을부터는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외박을 하고 출근도 안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유를 물으면 불같이 화만 내고 전화도 안 받더군요. 저도 직장에 매인데다 멀리 있으니 애만 태웠습니다. 그런데 2, 3주 전부터는 좀 살가워지고 밤늦게 다니는 일도 줄고 잠자리에서 돌아눕는 일도 없어져 안심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전 그의 전화기에서 20대로 보이는 여자 사진과 눈 쌓인 강원도 펜션에서 찍힌 남편의 차 사진을 확인했습니다. 같은 날 차에서 물건을 치우다가 여자 이름의 이동통신회사 고지서도 발견했어요.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모른 척하고 전화기 속 사진을 지웠습니다. 전에 비슷한 일로 한두 번 다툰 적이 있는데 남편은 내가 너무 집착한다고 합니다. 남편을 모질게 버리고 싶다가도 불쌍하고 가엾다는 생각이 들고, 지가 어디 가서 나처럼 오랜 세월 지켜줄 사람 만나겠나 싶기도 합니다. 아는 척하자니 뒷일이 겁나고 모른 척하자니 제가 너무 아픕니다. 지금의 평화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정신 버쩍 차리게 해주고 싶은데 주변에 자문을 구해도 답답하기만 하네요. 오여사님의 속시원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당장은 적나라하되 우아하게

A 확인하실 것도 없으세요. 남편분이 사랑에 빠지셨네요. 물론 법에서 말하는 '간통'(아! 제가 이 단어 참 싫어해요. 성인들 간의 쌍방 성행위를 국가가 간섭하다니) 행위의 여부까진 제가 단언할 수는 없지만 사랑을 하고 계신 건 감이 오네요. 마누라 바가지에 불같이 화를 내던 시기는 '그녀'의 사랑을 갈구하던 시기라 예민하셨기 때문에 버럭! 하신 거고 2,3주 전부터 당신에게 살가와지셨다는 건 그녀와 이제 안정기에 접어드셨기 때문일 겁니다. 바람 피우는 남자의 공통점은 갑자기 아내에게 친절해지는 거잖아요. 미안해서도 있지만 '그녀'의 사랑을 확인했으니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나머지 마누라 바가지도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거죠. 그러니 살가와지셨다고 안심하실 건 못 돼 보이네요.

근데 남편을 버릴라니 그 인간이 가여워서 안 되겠다는 거, 진심이세요?

버림받을까 봐 두려운 마음을, 애써 자기가 더 센 쪽이라고 보이고 싶어서 자신을 속이고 계신 건 아닌가요? 배우자의 휴대폰을 뒤져보는 순간부터 어느 쪽이 버림을 받는 쪽인지는 자명해지는 거랍니다. 그리고 남편의 어린 여친께서 남편의 남은 생을 끝까지 지켜줄 여자가 절대 아니라는 증거 있나요? 작금의 당신 상황이 그렇게 자신을 속여가며 '우아 버전'으로 버티실 때가 아닌 거 같은데요. 지금 그 두 양반은 운명적인 만남 운운하며 '뒤늦게 찾아온 사랑'에 흠뻑 빠져 계실지도 몰라요. 제가 그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일단 남편분께서 '선수'가 아니신 거 같기 때문이에요. '선수'는 흔적을 흘리지 않죠. 게다가 그 '안정기'가 고착되고 나면 이제 어느 날 어린 아가씨가 불쑥 찾아와서 "아주머니 나가 주시죠" 하는 수준으로까지 갈 수도 있어요. 왜? 본인들은 너무 확신하니까! 남이 하면 스캔들이지만 자기가 하면 로맨스인 거, 그거 아주 진리 중에 진리거든요.

일단 당신도 미래의 어느 날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 허우적대지 말란 법 없으니 남편과 남편의 여친을 너무 비난하진 마세요.

그리고 제가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유부남들은 웬만해선 이혼하지 않는다는 거 생각하시고 "자, 다 놀았으면 이제 집에 들어와야지?" 하는 자세로 '내가 알고 있다'라는 걸 알려주세요. 아마 뜨끔하실 겁니다.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금기 안에서 찾은 낭만을 즐기는 것일 뿐, 미래를 계획하고 가정과 가족을 다시 세팅하실 생각은 없을 가능성이 아주 크니까요.

부부 싸움은 피하기 어려운 과제인 거 같습니다.

머리끄덩이 잡고 울며불며 하는 건 취향이 아니신 거 같으니 말씀드리는 건데 '남'의 전화기 뒤지는 악취미부터 고치세요. 부부 사이라도 사생활은 있는 거라는 것, 명심하시구요. 그런 짓 자꾸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의부증 환자가 됩니다. 쪽팔린 퍼포먼스 없이 깔끔하게 정신 차리게 하려면 그만큼 부부 사이에 내공 있는 대화의 인프라가 쌓여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의 사태를 해결할 만한 대화의 인프라가 없으신 상태라면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가 되셔야 합니다. 그렇다고 또 너무 우아하게만 나갔다가는 진심을 하나도 전달하지 못한 채 집착녀로만 고착될 위험이 있으니 당장은 적나라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세요. 기분 더럽다고, 원하는 게 뭐냐고,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냐고 말입니다. 추측만 하는 건 바보짓이에요. 그 아가씨와의 사랑은 예쁘게 가슴에 묻은 채 남은 생을 나와 함께 잘해보자 하세요. 사랑은 화장품 향기 같은 거라 금방 날아가지만 부부의 정과 믿음은 깊게 흐르는 강 같은 거니까 당신이 이길 거예요.

그래도 못 헤어지겠다면 어떡하냐고요?

그건 남편분 얘기 들어보고 말씀드릴게요.
영화배우 오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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