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갈등의 계절

tlsdkssk 2008. 3. 22. 01:38

 

 

 

2005.06.01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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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계절

-- 續 겨울노래 --

 

봄바람이 불어왔다. 낙엽송 가지에 새 움이 텄고 친구는 퇴원하였다. 친구에게 불러 주었던 ‘겨울노래’에서의 소망은 이루어졌다. ‘삭풍을 앞세우고 봄이 온다네. /친구여 봄이 저만치서 /다가오고 있다네.’라고 한… .

봄바람이 마구 불었다. 소생의 봄바람. 그런데 봄바람에는 함정이 있었다. 훈훈하되 변덕스럽고 변화무쌍한 것이 봄바람이었다. 불다, 안 불다 하다가는 하루에도 서너 번 씩이나 방향이 바뀌어서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해질녘에는 다시 겨울이 오듯 춥고…. 소생의 바람이지만 저항의 반항아 같기도 하였다. 더구나 봄이 한창이다 싶으면 어김없이 봄바람은 황사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봄이 조용히 와서 저항 없이 여름으로 성숙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기는 올 봄이 처음이었다. T.S. 엘리옷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썼다. 잊고 있었던 그의 시가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북경의 황사바람은 1급부터 12급까지로 구분된다고 한다. 대륙에 군림하던 동장군이 하늘 높이 사라지는 자리에 고비사막의 흙먼지가 사정없이 때려 부는 북경의 봄바람은 하루에 바람예보를 세 차례나 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어서 그 강도 또한 12등급으로 나눈다는 것이다. 7급이면 가로수가 심하게 흔들리고 행인들은 입과 코를 막고 다닌다는데, 재입원하여 2차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친구는 자신의 형편을 12급 황사바람에 비유하였다. 지속적인 항암치료는 초죽음의 육신에 화학무기를 계속 쏘아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하늘이 숫제 보이지 않고 시계(視界)조차 없는 길을 계속 걸어야 할 것인지를 친구는 내게 물었다. 길을 걸을 수 없다면 이 바람을 피하여 어디든 우선 피신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나는 봄바람에 안절부절 못했다. “희망을 버리고 싶은 유혹마저 이겨내어야 하나.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그 가족들이 부담으로 느껴지는 것이 솔직한 심경이다. 수도승이었으면…, 홀몸이고 싶다.” 얼마나 신체적, 정신적으로 황폐해졌으면 아름답게 죽을 권리를 생각한다고 했을까.

다시 퇴원하여 집에서 요양하며 통원치료를 받는 친구에게 의사는 항암제를 지금까지 투여한 것만큼이나 더 투여하려 했다. 친구는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황사춘풍을 맞으며 정면 돌파를 해야 한다는 의사와 그 지독한 바람을 피해 가면서 생존의 길을 찾으려는 내 친구…,누가 옳은지 지금으로서는 판정이 유보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예방적 치료를 상당기간 더 하겠다는 의학적인 근거는 명쾌한 것이지만 친구의 이야기도 그리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친구의 주장을 설명하자면, 그 병에 대하여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처음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무균실에서 친구가 내게 핸드폰으로 병명을 말하면서 백혈구가 정상인의 5%수준이고 따라서 저항력이 신생아보다 못한 무방비 상태라고 했을 때 나는 백혈병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 병은, 백혈구가 정상인의 2배 또는 급성의 경우 10배 이상으로 급팽창하는 것으로, 혈액성분중의 백혈구가 암세포로 변하면서 무한정 증식하는 병이라는 것이다. 또한 백혈구 감소는 항암제를 혈액에 투입함으로써 종양성으로 증식하는 백혈구를 무차별 파괴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친구는 발병의 초기부터가 아닌, 본격적인 치료가 진행되었을 때에 나에게 상황을 전했기 때문에 내가 오해를 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발암부위를 절제수술한 후 항암제를 일시 투여하는 다른 암 치료와는 다르며, 입안을 마취시켜야 죽을 삼킬 수 있었던 그 지독한 입속 적막염이 지속적인 항암제 투여로 인한 백혈구의 격감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1차 치료기간의 중간에 이미 암세포는 더 이상 검출되지 않고 2차 치료까지 끝 낸지도 3개월, 이제는 제법 몸을 추슬러야 할 터인데 더 이상 자신의 육신과 정신력을 ‘방사능 오염에 노출 시킬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의학은 친구가 현재 ‘완전관해상태’에 있다고 해석한다. 완전관해는 검사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는 상태이긴 하지만, 검사에 나타나지 않은 잔존 암세포가 언제든지 다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예방적 치료의 목적으로 의사는 4차 치료까지 받는 것이 안전하다는 소견을 견지하고 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이 글의 주제 이외에 두 가지가 더 있다. 그 하나는 ‘겨울노래’를 읽은 독자들로부터 “친구 분 그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친구가 전화로는 설명할 수 없다면서 만나서 말해 주겠다고 했던 ‘엄청난 신앙체험’을 듣고 ‘겨울노래’의 속편을 쓰게 되면 그것도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이상의 항암치료가 불필요하다는 친구의 주장에는 이 신앙체험도 중요한 한 몫을 하고 있다.

친구는 어느 날 심신에 지고의 희열을 느끼면서 ‘너를 살렸다’라는 계시를 듣는다. 자신의 몸이 일시에 쾌유되었음을 느끼게 된 친구는 아침이 되어 주치의가 검사용 혈액을 채취하고 항암주사를 놓으면서 “오늘은 약을 더 많이 넣어 드릴게요.” 라고 하는 말에 ‘이건 쓸데없는 과잉친절인데… ’ 라고 생각한다. 친구의 확신대로 그날 채취된 혈액의 검사 결과는 ‘암세포 없음’이었다. 그러한 결과는 치료가 끝나고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나 기대할 수 있는데 치료의 도중에 일어난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 친구는 ‘계시의 항시증거성이 없음’은 인정하나 주관적 확신은 불변이며, 의사는 과학의 상식을 뛰어넘는 기적이 있음은 인정하나 의학에서 객관적으로 요구되는 추가적인 치료를 계속하려는 입장이다.

봄은 갈등의 계절인가. 봄바람에 갈등을 느끼기 시작한 나는 봄이 무르익도록 아직 갈등을 계속하고 있다. 정작 친구와 의사는 소신이 확고한데 친구를 지켜보는 나는 갈등을 멈출 수가 없다.

갈등의 계절에 부는 바람이 신록을 빚는 지금, 나는 이제 녹음의 계절이 어서 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1996년 여름 (200 x 16)

**이태방 군 간지 10년이다. 98년 2월 23일이었으니.

황사 철이 또 왔다. 병은 발생하면 치유하기 어렵고 예방이 필요한 것…

지하철에서 노인네가 황사 마스크를 팔기에 샀다. 4매 들이 1팩에 1,000원

이 것 하나면 금년 봄은 넘길 듯… 동문 여러분 우리 모두 병 예방 하며 삽시다!

2008년 봄

慕 戀 서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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