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써놓은 글인지 기억나지 않으나,
청탁을 받아이런 글을 쓴 적도 있었나 보다.
오랜만에 글 한편 올리려니
왠지 남의 글을 읽는 듯한 생경함이 느껴진다.
나의 문학관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원고청탁서의 제목을 읽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등단한지 10여 년이 되도록 그런 문제에 대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게다. 이런 내가 글을 쓰려니 쑥스럽기도 하여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라는 부제를 달아보았다.
어려서 책읽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문인이 될만한 특별한 싹수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림을 잘 그렸으니 가능성을 보인 것은 오히려 미술 쪽이었던 것 같은데 소풍 사건이 나를 바꿔버렸다.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창경궁(당시엔 창경원)으로 봄 소풍을 다녀 온 뒤 선생님은 ‘소풍’이란 제목으로 글짓기 숙제를 내주셨다. 그날 나는 창경원 입구에서 한눈을 팔다가 길을 잃어 몹시도 마음을 태웠다. 당연 할말이 많았기에 일사천리로 써 내렸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아버지가 원고를 읽어보더니 내 허락도 없이 일부를 고쳐놓았다. 친구들이 안 보여 애를 태우긴 했어도 울지는 않았는데 아버지는 웬일로 ‘엉엉 울며 선생님을 애타게 찾았노라,고 고쳐 놓은 것이었다. 나는 울지 않았노라고 항변했지만 그래야 읽는 사람이 더 재미있다는 말씀에 할 수 없이 그대로 원고를 제출했다.
내용이 괜찮았던지 선생님은 내 글을 칭찬해 주셨고 1학년생 중에선 유일하게 교지에까지 실렸다. 거짓 울음이 끝내 내키진 않았지만 연필심에 침 발라가며 꾹꾹 눌러 쓴 첫 글이 활자화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사건은 글 쓰는 재미를 톡톡히 알게 해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글 쓰는 일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던 건 부끄럼 많고 내성적인 내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말로는 제대로 펼칠 수 없는 것도 글로 쓰면 얼마든지 펼쳐낼 수 있었다. 수줍은 나였지만 글로 표현하면 못할 말이 없었다. 그래 선가 때가 되면 국군장병 아저씨들의 답장이 꽤 많이 날아들었다.
나는 점점 더 작문을 즐기기 시작했다. 말로 표현할 때 보다 더 구체적으로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게 좋았다. 말처럼 금세 사라지지 않고 인화된 사진처럼 남아 있는 것도 맘에 들었다. 글을 쓰는 일은 알게 모르게 사고력을 키워주고 사물을 바라보는 눈을 트이게 했으며 보다 구체적으로 관찰하게 함으로서 세상 보는 눈을 넓혀주었다. 인생사의 슬픔과 기쁨들을 더욱 명징하게 각인시키며 내 내면의 텃밭을 채색해 주었다.
기록이란 그 자체로 지속성을 지닌다. 거기에 가치와 향기를 겸비했다면 영구성은 더해진다. 동서양의 고전은 물론, 작게는 젊은 날의 일기를 통해, 까맣게 잊고 있던 수십 년 전 내 역사와 그 시절 그 감정을 고스란히 되살려낼 수 있음도 문학이 지닌 위력이다.
녹슬며 사라져 가는 인생의 발자취를 나는 간단히 기록하고 글월이란 바늘로 그것들을 다시 깁는다. 다듬고 거르는 과정을 통해 그것은 문학의 소중한 자료가 된다. 메모장을 열면 수많은 삶의 순간들이 원석처럼 쌓여 있다. 문자로 기록되지 않았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을 삶의 궤적들. 그것이 세공 되어 하나의 작품 속에 녹아들 때, 그리하여 이미 사라진 시간들을 되살리며 추억할 수 있을 때, 더 나아가 그 과정들을 통해 내 삶이 고양되어짐을 의식할 때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
문학의 양광(陽光)은 나를 비춰주고 인간과 삶에 대한 사유를 키워줌으로서 내 정신의 몸피를 자라게 했다. 하지만 실은 오랜 세월 나는 문학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렸다. 예술 창작은 천재들의 전유물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문학의 그늘을 벗어나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러나 이제 나를 해방시키기로 한다. 태양 향해 고개 돌리는 해바라기 열정을 어찌 막으랴. 꽃이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제 마음껏 사모하게 내버려 둘 일이다.
일차적으로 나는 자기만족을 위해 글을 쓰지만, 예술의 사회성(현실참여)을 간과할 수는 없다고 본다. 작가가 참여 의지를 지녔든 아니든 문학이란 긍국적으로 어떤 형태로든지 참여를 하게끔 운명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작가란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기 존재를 민들레 홀씨 날리듯 퍼뜨린다. 사상과 정서를 문자에 담아 세상 향해 흩날리며 영토의 확장을 소망한다. 공감해오는 독자들을 만날 때마다 그의 공간은 확충된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인들은 다분히 식물적인 존재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언젠가 식물의 생명력이 동물보다 더 강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식물은 뭍 생명체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문학과 어우러져 사는 나의 한 생 또한 식물의 저력처럼 끈질길 수 있기를, 또한 문학은 나를, 나는 문학을 간단없이 살찌워가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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