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혜의 골방

책상 위에서 길을 잃다

tlsdkssk 2007. 9. 19. 07:34
 

2005년        <잡문>




                       책상 위에서 길을 잃다


                                                                                     

                                                


  쑥스러운 얘기지만 곧잘 책상 앞에서 헤매곤 한다. 책상 위에 오만 살림이 정리되지 않은 채 있다 보니 무엇 하나 찾으려면 번번이 이리 뒤지고 저리 뒤지게 된다.

  읽다만 책은 어디로 간 거지?

  원고 청탁 우편물은 어디 숨었고?

  받아 놓고 미처 포장을 뜯지 않은 책들은 또 어디 뒀냐구?

  잘 써지는 볼펜은 발이 달렸나?

  연필은 찾으면 꼭 없다니까.

  형광펜은?

  지우개는?

  지갑은?

  수첩은?

  핸드폰은?

  아니, 글감 메모한 메모장은 또 안 보이잖아?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내가 미쳐요, 정말….

  찾는 물건들이 순번을 바꿔가며 번번이 숨어(?)버리는 통에 애를 먹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러기를 수십 번.   드디어 어느 날 책상 정리를 했다.   해놓고 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 동안은 잡동사니를 온통 책상 주변에 늘어놓아 책상에서 요리조리 손만 뻗으면 되었는데, 정리를 말쑥이 하고 나니 기억이 더 안 나고 더 아득한 게 아닌가.   책장에 책을 얌전히 꽂아보기도 했으나 책 읽는 버릇이 좀 별난지라 한꺼번에 이책 저책을 봐야하는 고로 도루묵이 되었다.   혼돈 속의 질서에 워낙 익숙해지다 보니 질서가 되레 혼돈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혼돈= 나의 질서?

  이래서든 저래서든 나는 이따금 책상 앞에서 미아가 되곤 한다.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손에 연필이 쥐어져 있어야 하는데, 연필이 눈에 뛰지 않으면 그것을 찾느라 책상 위는 난장이 된다.   난장이 되다 보니 얌전히 있던 물건들도 제 위치를 잃고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혼란을 가중시킨다.   곧 외출을 해야 하는데, 어느 땐 지갑이 안 보이고, 어느 땐 열쇠의 행방을 모르겠고, 어느 땐 예닐곱 장이나 되는 손수건이 숨어버린다.

 “정말 못 말려!”

 “에그, 등신아.”

 “주님, 저 지금 미치겠거든요. 빨리 나가야 하니 열쇠 좀 빨리 찾아주세요.”

 어제도 그제도 난 책상 앞에서 이렇게 중얼대며 애를 태웠다.  도대체 이 좁은 책상에서, 누구 한 사람 손대지 않는  공간에서 나는 왜 번번이 헤매는 거람?  이 짓에 길들여지다 못해 이젠 숫제 은근히 즐기는 걸까? 헤매긴 해도 결국은 찾아내고 말았으니까. 시간을 다툴 때면 애간장이 타기도 하지만, 어릴 적 숨바꼭질을 하듯 그 맛이 짭짤하기도 하니까. 때론 일상의 권태를 물리치게 하는 작은 소일거리도 되니까.  그러고 보면 나라는 존재는 다소 괴이쩍은 동물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어느 집을 방문하여 나보다 더한 사람이 있음을 알고 놀란 적이 있었다. 그는 모 대학 교수님이었는데, 거실 바닥이 온통 그의 책상이었다. 책더미와 신문 더미, 쓰다만 원고와 문구들이 이리 저리 널려 있어 이삿짐을 펼처 놓은 것 같았다.어찌 내가 저 경지를 따라가랴. 나는 자위했다. 아하, 나 정도로는 괴물측에 속하는 게 아니로구나.

  내가 한숨을 쉬니 교수의 아내는 어질러진 것에 손을 댔다간 큰일이 난다고 귀뜸을 한다. 일순 인간의 얼굴들이 왜 그리 천차만별한지 알 것 같았다.  어떤 인간은 한치의 흐트러짐만 있어도 못견뎌하는데  정리가 되면 못견뎌 하는 인간도 있으니 인간의 평화공존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좌우간 인간이란 족속은 영원한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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