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4월 발표작)
리라꽃 향기
4월이다. 버릇처럼 사방을 기웃거린다. 훈풍 속에 환각의 내음이 실려올 무렵이 된 것이다. 라일락 향기가, 정향나무 향기가, 수수꽃다리 향기가, 아니 리라꽃 향기가.
리라꽃 내음을 맡아본 것은 초등학교 시절의 일이었다. 4학년이나 5학년 쯤이었을 것으로 기억된다. 이웃집 담장에서 아기별같이 다닥다닥 피어 있는 리라꽃을 처음 보았다. 보다 정확히는 그 향에 취한 것이 먼저였겠다. 꽃내음에 끄을려 시선을 옮기니 거기에 하얀 라일락이 손짓하고 있었던 거였으니까. 리라꽃은 웬일로 밤이면 더욱 고혹적인 향기를 들이 붓곤 하였다.
나는 우정 그 근방을 얼씬거리며 환장할 듯 강열한 꽃의 체취를 깊숙히 들여마셨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괜스레 꽃향기에 내 몸을 실어 어디론가 떠다니고 싶은 충동마저 일었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얼결에 나온 말이 “아, 바람 날 것 같애.”였다.
그 즈음, 나는 ‘베사메 무초’라는 유행가를 곧잘 흥얼거였다.
베사메, 베사메 무초
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피는 밤에
베사메, 베사메 무초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
………
노래에 젖다 보니 리라꽃 향기가 궁굼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어떤 향취이기에 노랫말이 그리도 매혹적 것일까.
주변에선 리라꽃을 찾을 길이 없었다.
라일락을 프랑스에서 ‘리라’라고 한다는 걸 알게 된 건 중학생이 되고 나서의 일이다.
‘베사메 무초’를 나름대로 ‘고독, 혹은 ’외로움에 묻혀’라는 의미일 것으로 짐작했는데, 그 의미가 ‘kiss me much’라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나이 서른을 넘기고서의 일이고.
어린 것이 천연덕스럽게 베사메 무초를 흥얼거린 생각을 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리라꽃 향기는 봄이 한창 무르익을 즈음 바람에 실려 만인의 가슴을 흔들어 놓는다.
봄의 행복 중에 리라꽃 향기가 주는 기쁨을 빼놓을 수 없으리. 아무리 무딘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는 유혹의 향이 그 작은 꽃송이마다에 향수처럼 배어 있어 한빨짝 떼지도 않고서 리라꽃은 사람들을 잘도 불러 모은다.
하트 모양의 잎새는 아직 사랑을 맺지 못한 수많은 심장들이 연인을 부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선지 예나 지금이나 리라꽃 그늘 아래 서면 아지못할 연심부터 일렁인다.
다시 태어나 사랑을 틔울 시절이 오면, 나는 리라꽃 피기를 기다려 그 꽃그늘 아래서 마음을 열어 보이리라. 꽃말도 마침 ‘첫 사랑’과 ‘젊은 날의 감동’ 이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