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혜의 골방

투명첼로

tlsdkssk 2007. 1. 4. 20:56
  <2001>

                    

                                       투명 첼로

                                                         

   

                                                       

  해묵은 첼로를 꺼내었다. 세월의 먼지를 털어내고 그리운 이 보듬듯 가만히 볼을 대어보았다.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일렁인다. 숨을 고르며 나는 손에 쥔 활로 팽팽히 긴장돼 있는 현을 내리 긋는다. 누에 실 나오듯 악기의 몸체로부터 올올이 풀려져 나오는  선율. 연주자의 손길에 바흐의 첼로곡이 너울대듯 춤을 추고, 그윽하니 번져오는 저음은 아득한 심연으로 잦아들다가 다시 격정적으로 비상을 한다.

나는 그 음감(音感)이 시키는 대로 고개를 숙였다가 제꼈다가 반복을 하며 바흐를 연주하고 있다. 첼로와 나는 한 몸이 되며 점점 바닥 모를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적이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나를 보고 합주부에 들어오라 하셨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현악부가 널리 알려져 있었다.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집안 형편을 알면서 비싼 악기를 사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난처하여 고개를 떨구고 있으려니 담임선생님은 의외의 말씀을 하신다.

  “악기 걱정은 할 필요 없어. 네가 성실해서 선생님이 추천한 거야. 지금 모집하는 게 콘트라베이스인데, 넌 키가 커서 잘 해낼 거야. 악기는 학교에서 준비한 게 있단다.”

 

  꿈만 같았다. 기쁜 나머지 그 즉시 수락하며  감사를 드렸다.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우리 단원들은 경향신문사와 이화여중고가 주최하는 음악 콩쿨에 나가기 위해 매일 방과 후마다 맹연습을 하였다. 초보자인 나는 교직원 숙직실에 홀로 남아 연습을 하기도 했는데, 유명 음악가의 일화에서나 나옴직한 사건도 하나 있었다.

 

  어느 날인가, 그 날도 나는 숙직실에 혼자 남아 연습을 하고 있었다. 연주를 하던 중 바람결에 그만 보면대(譜面臺)의 악보가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그걸 주우려 하자 담임선생님이 빙긋이 웃고 계시지 않는가.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누가 온 것도 전혀 모르고 연습에만 골몰해 있더란 게다.

 

  선생님은 매우 흡족해 하셨지만 정작 나는 첼로에 더 관심이 많았다. 총연습을 하다가 쉬는 시간이 오면 나는 얼른 첼로 옆으로 다가가 ‘도레미파’로 시작하여 쉬운 동요를 켜보기도 하고 자작한 ‘막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첼로를 가르치던 선생님 역시 내가 첼로에 소질이 보인다며 그쪽으로 바꿀 것을 적극 권하셨다.

 

  우리 학교 합주부는 오케스트라로 조직을 확장한 후, 예상대로 콩쿨에 입상도 하여 이듬해엔 미국을 비롯한 해외 18개국에 공연까지 예정돼 있었다. 그 기간만도 6개월 이상이 걸린다기에 아예 한 학년을 다시 공부할 계획까지 세워두었다. 국내 여행도 어렵던  시절이니 우리의 기대와 흥분이 어떠했을지는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게다.

 

  드디어 나는 아버지께 첼로를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해외 공연을 나가게 된 것에 고무되었던지 아버지는 5학년이 되면 꼭 첼로를 사주마고 약속하셨다.

  나는 어서 학년이 바뀌기만을 기다리며 집이 빌 적마다 첼로를 꺼내어 첼리스트 흉내를 내곤하였다. 악기야 아직 마련돼 있지 않았지만 나만의 상상력으로 가상(假想)의 ‘투명 첼로’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나는 혼자 집을 보며 창틀에 앉아 다리를 밖에 내놓은 채 바람을 쐬고 있었다. 우리가 살던 집은 축대 위에 있어 비탈진 골목길에서 보면 훤히 올려다 보였다. 창가에 앉아 있던 나는 불현듯 첼로 생각이 간절해 다시금 투명 첼로를 품에 안았다. 이어 학교에서 연습하던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와 브람스의 멜로디를 허밍으로 흥얼대며 악기를 켜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골목길 저만치서 짝짝짝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흥에 겨워 가공의 첼로를 켜는 진풍경을 누군가 보았던 모양이다. 어찌나 놀랍고 창피하던지 하마터면 높은 창 아래로 떨어질 뻔 하였다. 박수를 보내며 웃고 있는 사람은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 연주가에 그 관객이었던 셈이다.

  그 후, 나는 두 번 다시 투명 첼로를 꺼내지 않았다. 4.19와 5.16의 격동기를 맞으며 해외 공연은 물거품이 되고, 중학 입시 준비로 합주부를 그만 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방금 내가 다룬 악기는 오래도록 켠 적이 없는 그 옛날의 투명 첼로다. 아득히 잊고 지낸 걸 다시 켜게 된 것은 D 동인의 홈페이지 덕분이었다. 홈페이지를 열어 여기저기 들추다보니 한 귀퉁이에 파블로 카잘스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첼로조곡이 올려져 있다. 이 모두 평소 애호하던 게 아닌가. 선율에 취해 나도 모르게 첼로를 꺼내었다.

  카잘스가 바흐를 연주했다면 나는 투명 첼로로 카잘스를 재현한 셈이다. 인간의 원형이란 세월이 흘러도 쉽게 변하지 않는지 거듭 재생을 시켜가며 네댓 번도 넘게 켰다. 혼신을 다했더니  땀으로 몸이 다 축축해온다. 관객이 없었기에 그 시절 이상으로 명연주를 한 것 같다.

 

  범상을 뛰어 넘는 아름다움엔 존재를 궤도이탈 시키며 몰아로 치닫게 하는 뭔가가 있는가보다. 절대의 감흥에 나는 아득한 세월 저편을 넘나들었다. 그 옛날 내가 투명 첼로를 만들었다면, 투명 첼로는 시공을 넘어 나를 그 시절로 환원시켰다.

 투명 첼로, 그것은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내 삶의 흥이요, 영원한 내 삶의 악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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