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번째 제주 여행 3박 4일.
같은 장소를 여섯번이나 가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풍광이 아름다운 곳은 몇번을 가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자연이란 계절과 일기와 시각에 따라 얼마나 그 느낌과 색채를 달리 하던가.
이번 제주 여행기간 동안 나는 제주의 온갖 날씨를 거의 맛보고 온 셈이다.
첫날은 앞이 안보일 정도의 심한 안개와 태풍급의 비 바람으로
바람의 섬 제주의 위력을 톡톡히 맛보았다.
안개 속에서 산발한 머리채를 흩날리는 야자나무는 기괴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이튿날 아침 혼자 중문 단지를 산보하는데, 한 순간 바람에 두 다리가 휘청하니 꺾인다.
언덕에 오르니 이번엔 나를 바닷가로 날려보낼 듯 강풍이 인다.
꼿꼿하던 내 몸은 일순 풀잎처럼 눕고 나무가지처럼 휘어 버렸다.
야수같이 미친 바람이 공포스러울 지경이다.
그래도 싫지가 않았다. 아니 좋았다. 대체 어디서 이런 황홀한 바람을 맛보랴.
드 넓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맞는 바람맛이라니.
주위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하늘과 바다와 그리고 바람이 내지르는 기괴한 소리와 초목들의 몸부림 뿐..
환경이 인간을 지배한다던가.
그래서겠지만 토박이 제주인들은 상냥한 맛이 적어 보인다.
오죽하면 제주의 모 시인은 내게 이런 말까지 하겠는가.
"제주 남자 매너 없고, 제주 여자 무드 없다."
양 이틀 간은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일 만큼 날이 맑았다.
제주도인들도 한라산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날은 일년중 40여일 밖에 안 된다고 하니,
날씨가 부조를 톡톡히 한 셈이다.
하지만 잘 놀고 즐기다가 큰코 다치고 왔다.
산행을 싫어하는 남편 때문에 가벼운 단화만 신고온 게 문제였다.
여행 떠나기 전 나는 등산화를 챙겼다가 도로 빼놓았는데,
운동화를 갖고 가면 나 혼자라도 한라산을 오르고 싶어 안달이 날까봐 아예 빼버리고 왔다.
이번 여행은 순전히 남편 위주로 하려고 맘 먹었기 때문이었는데,
앞으론 장거리 여행을 떠날 때 보다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다는 반성을 했다.
여행지에선 늘상 예기치 않은 변수가 생길 수 있는 법.
사흘 째 되던 날 나는 해안가에서 바위를 잘 못 디뎌 넘어지는 바람에
뾰족바위를 덮치면서 양 무릎, 손, 턱, 코에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었다.
상처가 가장 심한 곳은 오른 손바닥과 턱밑이다.
피를 제법 흘렸고, 좋아하던 바지도 찢어져버렸다.
뿐이랴, 지금 내 얼굴은 누구에게 쥐어터진 형상이라
얼굴 들고 맘대로 나다닐 수도 없다.
하지만 그 사고가 마지막 날에 있었기에,
나는 말을 타고 무섭고 신나게 달려도 보았고,
300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고(그중 절반은 택시 기사가 찍었주었다),
다니고 싶은 곳을 웬만큼 돌아보았다.
뾰족돌에 엎어졌으나, 목에 걸고 있던 썬그라스도 상하지 않았고,
턱밑이 상처를 입는 바람에 얼굴 정면엔 고작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을 뿐이다.
사고가 난 해안은 택시 기사가 안내한 절경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꼭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우리를 안내했는데,
만약 그가 다쳤다면 내 입장이 무척 곤란할 뻔했다.
만약 남편이 넘어졌다면 그는 운동 신경이 엄청 둔해
나보다 엄청 더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앗차, 하고 넘어지는 순간 난 번개처럼 생각했다.
"얼굴만 다치지 말거라. 제발 얼굴만~~"
그리하여 내 오른 손 바닥으로 바위를 가렸다.
그럼에도 턱을 심하게 다쳤고,
오른 쪽 무릎이 으깨졌고,
손바닥 살점이 다섯 군데나 떨어져 나갔다.
첨엔 턱이 으깨진 줄 알았다.
어찌나 아픈지 눈물이 쑥 나오고 앞이 아른아른했다.
그래도 남편과 기사가 염려할까봐 흐르는 피를 손수건에
찍어내며 별로 안 아픈 척 웃어 보였다.
턱은 지금도 얼얼하나, 병원까지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만하길 천만 다행이다.
인생 만사 생각하기 나름이다.
요만큼만 다치게 해준 것에 하느님께 감사~ 또 감사.
**
<이 사진은 순전히 택시 기사의 명령에 의해 찍혀진 사진이다.
그는 자기가 감독이고 내가 배우라도 되는 양 명령을 하는 것이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이동을 하지 않기에 할 수 없이 송악산정에서
이 난리 부르스까지 추었다)
<제주의 풍광이 가장(?) 아름답게 압축된 '이시도르 목장'에서 말과 함께.
이곳엔 너른 초장과 아름다운 기도 동산 등이 어우러져 있는데다,
주위의 오름과 한라산까지 바라볼 수 있어 낙원처럼 아름다웠다.>
<제주의 푸른 초장은 정말 환상적이다>
![](https://img1.daumcdn.net/thumb/R46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planet%2Ffs8%2F18_2_6_26_sjNA_4820055_0_16.jpg%3Fthumb&filename=16.jpg)
![](https://img1.daumcdn.net/thumb/R46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planet%2Ffs2%2F18_2_6_26_sjNA_4820055_0_5.jpg%3Fthumb&filename=5.jpg)
<제주의 봄은 유채꽃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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