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봄아, 어쩌란 말이냐.

tlsdkssk 2006. 3. 30. 05:40

어제 엄마에게 갔더니,

새로 샀다면서 옷을 보여주신다.

연보라빛 봄 재킷이다.

벌써 두달 째 두분불출하며 병원 행차만 겨우 하는

엄마가 새옷이라니?

어디 나들이 가실 일이라도 있냐고 묻자,

"아니, 그냥 샀어. 봄볕을 보니 어딘가 가고 싶어 환장이 되더라.

창밖의 벚꽃 좀 봐라, 날마다 봉오리가 달라진단다." 하신다.

순간, 아, 울 엄니 열정이 아직 남아 있구나.

비록 81세 암환자 노인이지만,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다리마저 제대로

못 움직이지만 엄마 가슴에도 봄바람이 들었구나, 싶었다.

 

난 엄마의 옷을 걸쳐보며,

"참 이쁘네요." 했다.

그러다 문득 이 옷을 올케가 보았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싶었다.

모르긴 해도 올케가 이 옷을 본다면

노욕이라며 흉볼 것만 같다.

내가 올케의 입장이라 해도 그랬을지 모르니

난 지금 올케 흉율 보자는 게 아니다.

 

 

삶이란 언제나 현재를 사는 것.

다섯살 아이에겐 다섯살의 인생이 전부이듯이,

80번째 봄을 맞는 엄마에겐 올 봄이 엄마가 당면한 현실이자

엄마의 전부일 거라는 말을 하는 거다.

양지 바른 엄마네 아파트 창엔 봄이 유난히 빨리 온다.

몸피 굵은 수십년 된 벚나무와 목련도 많다.

풀밭엔 온갖 풀꽃이 수놓듯 피어나고 있다.

고개만 내밀면 엄마의 창문엔 봄의 얼굴이 가득하다.

생명이 소진해 가는 엄마에게 이 봄은 얼마나  더 생기하게 느껴질까.

천지 가득한 봄을 병든 노모는 어쩔 것인가.

 

봄에 돌아가신 울 아버지는,

임종 당시 봄 오는 창밖을 내다보시며

"봄은 저리 오는데, 난 어떡하지? 어떡하지?"하셨다.

엄마는 새삼 그 얘기를 하시며

"네 아버지 그 심정을 알것만 같다." 하신다.

 

봄이란 땅 속에 잠자던 생명체를 흔들어 깨우는 계절,

코끼리 가죽 같은 묶은 가지에  새잎과 새 꽃을 피워내는 신비한 계절,

그리하여 암에 걸린  내 팔십 노모의 마음까지도 뒤흔들어 놓고마는 계절.

 

 

사람은 늙을수록 봄을 좋아하게 된다고 한다.

생명력이 충만할 땐 무어 그리 그것을 절실히 탐하게 되랴.

노인들이 고운 색을 탐하는 것도,

그들 인생의 봄이 소실점처럼 멀어진 때문일지 모른다.

나도 젊을 적엔 개나리 진달래가 촌스럽게 보이더니

이즈막엔 그리도  고와보일 수가 없다.

봄꽃이 만개하면, 나도 모르게

'봄아, 어쩌란 말이냐?'만 되풀이 할 뿐이다.

부디 울 엄니가 그 봄옷을 차려 입고

즐거운 봄나들이를 하실 수 있기를,

엄마 손을 꼭 잡고 봄이 오는 파릇한 들녘을

지치도록 걸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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