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산행 후기)황정산, 나 어떡해요?

tlsdkssk 2006. 4. 4. 07:16

4월3일 단양 황정산 가는 날이다.

새벽 6시 30분. 산꾼들을 태운 버스는 발산동을 지나 한강을 달리기 시작했다.

안개가 자욱하여 강변 도심의 풍경들이 사뭇 몽환적이다.

서울을 벗어나자 정겹고 익숙한 풍경들이 차창으로 가득 안겨든다.

무엇보다도 반지르르하게 손질해놓은 밭들이 내 눈엔 인상적이다.

어찌 저리 흙 색감이 다양하고 아름답단 말인가.

나처럼 흙을 좋아하는 사람도 그리 흔치는 않으리라.

흙내음, 흙빛깔, 흙 감촉... 그 모두를 나는 지독히도 좋아하니까.

비를 머금은  밭들은 어째 하나같이 떡판으로 보인다.

쵸콜렛 빛으로 갈아 놓은 밭은 팥고물  시루떡,

누르끼리한 밭은 콩고물  제사떡...

아침을 제대로 못 챙겨서 그런가 나는 저 거대한 떡(?)을

한조각 썩 베어내어 볼이 메도록 먹고만 싶어진다. 

 

 

                                                     *

오전 10시. 드디어 버스는 달릴 곳을 다 달렸다는 듯, 자리에 멈춰선다.

나는 습관처럼 앞으로 나가려는데, 대장님이 "오른 쪽 옆으로 가요!" 하신다.

옆? 옆은 바닥 얕은 냇물이 흐르고 있는데? 

좌우간 물을  밟고 대장님의 뒤를 따른다.

한데 대장님은 곧장 가파른 경사를 치고 올라가는게 아닌가.

흐르는 땀으로 나는 초장 부터 점퍼를 벗어버렸다.

여기도 봄비가 내렸는지 산은 먼지 하나 없이 촉촉히 젖어 있다.

놓칠새라  나는 이끼를 주목한다. 비온 뒤의 산은 이끼의 잔치날.

맑은 날엔 숨죽이고 있던 이끼들이 물만 먹으면 

어찌 그리  아름다운 녹빛을 풀어 놓는지,

내 등산의 즐거움중엔 이런 이끼 감상을 빼놓을 수가 없다.

황정산은 초입부터 바위가 많아 이끼를 감상하는데 아주 제격이었다.

물론  이끼는 나무에게도 아름다운 덧옷을 입혀주고 있었다.

 

                                                    *

여기까진 좋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빛까지 가세하여

나는 속으로 오, 뷰티풀~  오, 원더풀~ 하며 걸었으니까.

한데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밧줄 타고 오르고 내리는 코스가 나오자

힘이 빠지고 속도가 쳐지기 시작하여 선발대에 있던 나는 후미로 밀려났다.  

밧줄 잡기를 두려워 하는 건 무엇보다도 내 손과 팔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난 본디 팔 힘이 약하다. 게다가 요즘엔 컴~ 을 많이 다뤄 손가락 마디도 시원찮다. 

밧줄을 탈 땐 주로 손힘에 매달리게 되는데, 내 손이 언제고 날 배신 때릴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을 당최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밧줄 잡기가 늘 두렵고 무섭다.

  

나는 그런 구간이 나올 때마다, 멈춰 서며 물었다.

'황정산, 나 어떡해요?'

한데 내 맘 같은 분이 또 있는지 뒤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나 못가!

 나 못가!

 나 돌아갈래!"

남자의 체면을 다 벗어던진,  말 만한 덩치의 다볼산악회 회장님의

원색적 추임새에 공포는 사라지고 웃음만 나온다.

하기야 돌아갈 수만 있다면 왜 못 돌아가리.

허나 이런 깊은 산엔 한번 들면 돌아갈 수 가 없다.

마치 사는 게 힘들다고 엄마 뱃속으로 되물림을  할 수 없듯.

번번히 느끼는 거지만 등산은 인생과 같다.

아니 인생은 등산과 같다.

다 올라왔나 싶으면 또 다른 오르막이 버티고  있고,

정상이 좋다고 그곳에 마냥 머물게 허락지 않는 등산은

어찌 그리  우리네 인생을 닮았는가.

 

 

산을 오르며 힘들 때 마다, 그간 내가 넘어온 삶의 여정을 도리켜보곤 한다.

사노라면 숨이 턱에 닿도록 힘들 때가 있다가도 다시 평지 같은 편한 길이 나온다.

허나 이런 평지는 결코 오래 펼쳐지지 않는다.

다시 오르막과 내리막이 되풀이 되면서  헉헉대고 미끌어지기도 한다.

그토록 조심했건만 어제 나는 마사토에 미끄러지고,

진흙같은 내리막길에 또 한번 미끄러져 옷을 버렸다.

코스 나름이긴 하겠으나, 어제의 황정산은 먼저의 월출산 보다 훨씬 힘들었다.

대책 없는 내리막길은 정말 사람을 당혹시켰으니까.

 

반 평생을 넘도록  넘겨온 내 인생의 산들과

어제 넘긴 깊고도 거대한 황정산이 다시 오버랩 되며

오늘 아침 내 시야에 어른거린다.  

내겐 또 어떤 산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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