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펀이 울리기에 받으니, "안나씨세요?" 한다.
생소한 음성이라 누구시냐 물었더니,
20여년 전쯤 한 동네에 살았던 사람이란다.
내 생각이 나기에 이리저리 수소문해 전화 번호를 알아냈단다.
나는 멋적게 웃으며 어째서 내 생각이 났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말이, 20년전 자기 남편이 세상을 떴을 때 내가 찾아와 조의금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마움에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고 수소문을 했으나
아이들과 먹고 사는 일에 바빠 이제사 연락을 했다는 거였다.
조의금이란 말에 나는 혹시 같은 동네 살았던 교우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당시엔 신자가 아니었으나, 이제는 세례를 받고 성당에 다닌단다.
도무지 기억에 없는 일이나, 그녀가 간곡히 만나기를 원하기에
다음날 11시에 화곡역 부근에서 만나기로 약속까지 하였다.
그녀는 서로 얼굴을 기억 못할테니 빨간 반코트를 입고 나오겠단다.
전화를 끊고 나니 궁금증이 솟는다.
그 정도라면 전화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별 친분도 없었던 나를 굳이 보자고 하는 건 무슨 까닭일까.
20년 전이라면 나도 몹시 어렵던 시절. 친분도 없던 그녀에게 조의금을 주었다면
아마도 형편이 매우 딱했던 여자가 아니었나 싶다.
암튼지 조용히 숨어 사는 나를 낯모를 사람이 찾아내는 걸 보면
죄 짓고는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멀찌기 헤어져 살아도 징검다리처럼 이리저리 연결이 되어 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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