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그 잔치는 끝났다.
하지만 아들로 인한 축제는 내게
여러 의미를 되새기게 하였다.
남들에게 쉽게 받았던 청첩장이, 그러나
내가 보내기엔 그토록 어려운 것인지도
처음 알았고, 청첩장을 쓰면서 수신인들과 내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어 진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아들의 결혼식은 지난 일욜 12시였다.
그 사실을 안 순간, 내 머리에 떠오른 건,
골수 크리스찬(개신교)은 참석하기 힘들겠구나, 였다.
내 친척과 친구 중엔 교회에서 직분까지 받은 골수신자가
더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 H에게 청첩장을 건넬 때
내가 처음 한 말은
"이유여하 막론하고 넌 안 오면 나한데 죽어.
뿐이냐? 네 남편까지 모시고 와야 해." 였다.
이런 부류는 A급의 관계라 규정할 수 있겠다.
그 담엔 보내? 말어?를 잠시 생각한 한 다음
청첩장을 띄운 부류가 있다. 그들은 B급의 관계들이다.
세번째는 보내? 말어?를 생각하다가
보내지 않은 부류들로, 그들은 C급의 관계들.
마지막으로 이름은 떠올랐으나,
아무 생각없이 보내지 않은 부류들로,
이런 관계는 D급이라 정의하였다.
D급 중엔 한때는 나와 절친(?)했던 사람도 있었다.
내 졸고에 반해(?), 우리 집 근처까지 찾아오기를
두세번이나 반복하며, 열심히 전화를 걸어주고 하던
제법 저명인사에 속하는 남성 한 분과,
수십년 지기이면서도
어느날 그쪽에서 무슨 오해로 연락이 두절됐던
동창 친구 한 명이 있다.
이번 잔치를 치르며 나는 두 사람과 화해하였다.
위에 말한 동창은 소식을 전하지 않았음에도
어찌어찌 알고는 찾아주었고, 또 한 분은 내 쪽에서
걸음을 멀리한 13년지기인데, 이번에 내가 그 분을
초청하여 반가운 해후를 가졌다.
나와 유사한 일이 교우 S에게도 일어났다.
교우 S와 L은 지난 날 원수처럼 극렬히 증오하며
지내는 사이였으나,
그날 축제에서 만나 이후 서로 깊은 화해를 하였단다.
축의금 또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형편이 무지 어려운 한 교우가 10만원을 보내준 반면,
한달에 연봉만 400만원이 넘고,
기타 부수입 등으로600~700만원이 넘는 돈을
늙은 몸으로는 혼자 쓰기 버거워, 울 엄니에게
돈 쓸 일 있으면 불러달라 했다는 한 친척 아저씨는
봉투에 3만원만 넣었다.
그런가 하면 아무 연락 안했음에도, 내게 연락도 없이
은행 통장으로 돈을 보내온 지인도 있었다.
어려운 교우의 10만원은 정말로 눈물겨운 축의금이었다.
그녀가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조금씩 도와준 사실은 있지만,
남편도 없이 근근히 살아가는 그녀에게 10만원은 값어치는
일반인들에겐 50~100만원의 가치만큼이나 큰 것임을 안다.
그녀에게 일부만 받고 돈을 돌려주겠다 했더니,
"안나도 어렵잖아? "한다.
돈을 돌려주면 그녀가 받지 않을 게 뻔하니,
언제고 고기근이라도 사들고 찾아볼 생각이다.
또 있다. 자린고비로 유명한 모 교수님과
M선생님이 보내오신 우편환.
M 선생님에겐 연락도 안했으나,
그분은 제주도 여행으로 참석지 못한다며
5만원을 보내오셨다.
남들에게 자판기 커피 한잔 안 사주시는
모 교수님이 보낸 5만원도 내겐 작은 충격이었다.
잔치는 끝났으니 이제 인사 편지를 보내야 할 텐데,
이렇듯 사연들이 다양하다 보니, 같은 내용으로 인쇄된
카드를 보내기가 싫어진다.
한데 몸은 고되고, 할 일은 많으니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축제의 마침표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