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가을에 온 편지

tlsdkssk 2005. 10. 12. 06:19

편지 한통이 배달 되었다.

겉봉에 쓴 글씨는 만년필 잉크 자국이 번져 있어,

뭔지 모를 훈훈함이 배어있는 듯 했다.

발신인은 전직 E여대 교수님이자 조각가요

피아니스트이자 수필가이신 Y 선생님이다.

그 분은 동인이면서 나와는 얼굴 한 번

마주친 적이 없는데도,

몇 차레 연하장을 보내주셨다.

손수 그리신 연하장을  받고도 나는 그만 답장을

놓친 적도 있었고, 고작 이멜 카드로 땜빵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해인가는, 크레파슨지, 색연필인지로

그림을 그려 보내드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좀 주책기가 있는지, 못 그리는 그림으로  

이따금 지인들께 그림 카드(연하장)를 보내곤 하였다.

그 대상은 주로, 마땅히 인사를 차려야 했으나

못 차린 분들에 한정되었다. 

거기엔 내 정성과 아울러 카드를 사러가야 하는

번거로움이나 카드 값 절약이라는 삼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는데,  다른 분들에겐 아무 부담없이 쓱쓱 그려

보내드렸으나. Y 교수님 경우는 하필 미술을 전공한 분인지라

이만저만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나는 일단 손을 놀리면 머뭇거림이 적은 편인데도

그 선생님께 보내는 것만은 두 장인가 파지를 내고,

세번째에 어린애 같은 유치한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난다.

 

어제 Y 선생님은 편지 한 통과 곁들여

수필 한편을 보내오셨다.

좀 봐달라는 것이다.

한데, 나와는 비교도 안될 학식과 덕망과

예술 세계를 지닌 분이 너무도 겸허히 하시는 말씀에

나는 그만 뭉클해졌다.

 

<...이번 동인지에 나온 글도 맨 먼저 읽었습니다...>

 

<이 사람이 글을 보내는 작가는 두 세사람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창작 예술은 결코 권위주의나 포퓰리즘에

현혹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미술 작품도

평론가에게 보다 제자에게 보입니다....> 

 

그러니, 어찌 감동하지 않겠는가. 

이 가을에 보내온  잉크빛  편지 한통을 받아들고,

모처럼 아련한 향수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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