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힘 좋은 땅

tlsdkssk 2005. 10. 11. 05:49

문우 Y에게 고추 열닷 근을 샀다.

농약을 거의 안 친 100% 태양초란다.

그는 머지 않은 퇴직에 대비하여

경산 외곽에 농가를 마련하고,

본격적인 농사를 준비하는 중이다.

 

어제 그가 서울로 출장 왔다기에

저녁에 잠시 만났다.

교육차  왔다는데, 마침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목동에 있어 소주 한잔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농사 일로 얼굴이 구리빛이 된 그는,

바지 주름 세워 차려 입은 양복이 되레

어설프게 보일 만큼 농군 냄새가 물씬 난다.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려도,

문단 경력은 훨씬 선배인데,

그는 이제 글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농사 짓고, 돈 만지는 재미에 정신을 다 빼앗긴 듯

내가 글 얘기를 하면 그는 딴청만 한다.

 

평소 그의 문재를 아꼈기에, 필을 놓고 있는 그가

매우 섭했으나,  대학 보낼 자식 둘이 있는 가장인만큼,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문약(文弱)에 빠져 지내는 무책임한 가장보다

얼마나 더 아름다운 모습인가.

 

나는 어제 고추값을 들고 나갔는데,

그는 죽어라고 값을 받지 않는다.

남들은 20번쯤 치는 농약을 자기는 2번 밖에

치지 않아, 농약값도 절약됐고,

사람들에게 홍보도 잘 되어

물량이 없어 못 팔 정도로 잘 팔린다고 했는데,

돈을 건네자 길길이 뛴다.

 

태양초를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나도 조금은 안다.

볕이 좋아 고추를 말리려면

금세 비가 쏟아지고,

들여 놓으면  다시 해가 뜨고...

때문에 진짜 태양초는 극히 드물다.  

마누라랑 그 고추 말리느라 애 깨나 먹었는 소리는

연신 하면서도 돈만 건네면 폭력적(?)으로

내 손을 잡는 그에게 내가 물었다.

무슨 재주로 농약을 거의 안쓰고

고추 재배를 했느냐고.

 

그의 대답이 이러했다.

몇년 놀려 둔 남의 묵정밭을 빌려

거기에 고추를 심었다는 거다.

땅이 건강하니, 농약 쓸 일이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인간이나 자연이나 휴식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새삼 깨달은 어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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