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혜의 골방

다시 보는 명화 <닥터 지바고>/애나

tlsdkssk 2005. 9. 18. 10:01

 

 

TV에서 방영한 <닥터 지바고>를 다시 보았다.

고 1땐가 보았던 그 영화는,

해 마다 두어차례씩  내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 중의 하나였다.

 

광활한 시베리아 설원은(촬영지가 어디었든)

한 여름 삼복을 지낼 무렵이면 뜬금 없이 떠올랐고,

눈이 오지 않는 메마른 겨울에도

불쑥불쑥 설원의 정경들이 스쳐오며

눈에 대한 내 굶주림을 달래주곤 하였다.

 

아침형 인간인 나는 TV에서 보여주는 명화들을

제대로 본 적이 거의 없는 편이다.

쏟아지는 잠의 위력에 영화의 시그널이 울려퍼질 무렵이면,

기다리던 설레임과 수고도 헛되이 나는 잠들고 말았으니까.

 

한데  지바고는 그 전례를 깨면서 

영화의 감동과 여운을 십분 안겨주었다.

지바고와 라라의 지순하고도 비극적인 사랑,

그들 사랑이 빚어내는 서정적 아름다움과,

공산주의 혁명기의 러시아 역사가 담긴 서사시적 사건 전개,   

광할한 영상과  발라라이카로 연주되는

라라의 테마 뮤직이 주는 감동에 대해서는

새삼 뇌이지 않으련다.

 

이번에 내가 특별히 주시했던 건,

라라의 주변을 끊임없이 맴도는 변호사

'카마롭스키'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17세 된 라라의 육체를 범하므로서

라라의 영혼을 절망에 빠드리면서도,

끝내는 현실적 구원을 이뤄주는 인물로 등장한다. 

 

라라의 남편이었던 혁명가 '파샤'의 죽음 이후,

위기에 놓인 라라 모녀를 살려낸 것은,

그녀를 지순하게 사랑했던 지바고가 아니라,

지바고와 라라가 그리도 경멸하고 혐오하는

카마롭스키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는, 이 세상이  지바고 같은

고결한 이상주의자들 만으로는

결코 돌아가지 않음을 미리 간파한 인물이다.

그는 라라를 유린하고 난 뒤(어쩌면 화간이었을지도...)

절망하는 그녀를 향해,

'너는 창녀야'라는 선언을 함으로서,

그녀의 영혼이 더 이상 순결주의에  발부치지 못하도록

교활하고도 치밀한 처방(?)을 내려주기도 한다.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선과 악이 씨줄과 날줄 처럼 얽혀져

우리네 인생을 직조해 나간다는 것을 말하고자

두 사람의 대립적 인물을 등장 시킨 것일까.

 

후일 지바고의 연인이 되는 라라,

어쩌자고 그녀는 혐오스런 카마롭스키가 자신을 범할 때,

마침내는 함락되고 말았는가.

결국은 그를 끌어 안는 라라를 보면,

카마롭스키의 일방적 강간이었다고

볼 수 없는 이라송한 여운을 안겨준다.

 

나는 그 영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이제껏 내 주변을 스쳐간 몇몇 인간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밤이 이슥하도록 영화에 취해 있던 건.

어쩌면 내 삶에 궤적을 남긴 

추억의  남성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내 주변에도 지바고와 파샤와

카마롭스키적인 유형으로

대별되는  인물들이 있었다.

그들은 <지바고+파샤>거나,

<파샤+카마롭스키> 거나,

<카라롭스키+지바고> 같이

다소 혼재된 모습으로 나타나긴 했어도,

내재된 근본 심성만은 그 세 인물들과

참으로 유사했던 것 같다.

 

지바고가 그토록 혐오하는 카마롭스키가

라라를 구제했다면,

이웃에 대한 사랑을 생명력의 최고 형태로 보는

우리의 주인공 지바고는, 라라를 사랑하게 됨으로서

자신의 아내 토냐에게 치명적 상처를 남겨주었다.

그 부분을 글에선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토냐를 사랑했으며, 존경하기까지 했다.

그녀의 정신적 평온은 그에게 세상 어느 것보다 중요했다.

그는 그녀의 아버지나 그녀의 자신보다도

그녀의 명예를 헌신적으로 지켜주려 하였다.

그녀의 자존심에 상처를낸 사람이 있다면,

누구라도 찢어놓으려 했다. 그런데,

그녀를 모욕한 사람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 아닌가.

 

인생에 절대 선이라는 게  있는가.

역으로 절대 악이란 게 또한 있는가.

인간은, 그가 어떤 사상적 구조 위에 

자신의 삶을 구축하며 살아왔든

때로는 선이 되고, 때로는 본의 아닌 악이 되어

결과적으로 신과 악마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미스테리한 존재로 살아 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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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바고는 눈과 얼음으로 뒤덮힌 유리아친에서

끝내 라라와 이별을 하게 된다.

카마롭스키를 따라 떠나는 라라의 모습을

끝까지 보기 위해 지바고는 저택 2층의 유리창을 깨고

아득히 멀어지는 라라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맨 下단의 사진은 지바고가 바라보는 정경이다.)

 

 

 

           <지바고가 자신에 대해 쓴 시를 읽고 있는 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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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원으로 아득히 사라져가는 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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