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쌀 벌레 잡는 공장

tlsdkssk 2005. 10. 3. 18:44

일터에 가니, 아이들이 식탁에 둥그렇게 둘러 앉아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마침 공휴일이라, 초중고생 모두가 함께 있었다.

아이들 앞에는 신문지가 깔려 있고,  쌀들이 소복하다.

"너희들 지금 뭐하는 거냐?"

했더니,

"쌀 벌레 잡고 있어요."한다.

나는 ㅋㅋ 웃으며 말했다.

"마치 쌀 벌레 잡는 공장에 온 것 같네."

 

아이들은 선머슴 같은 중성적 목소리로 꽥꽥 고함을 질러대고,

깔깔 웃고 난리를 피우며 쌀벌레를 잡고 있었다.

지하 식품창고에 있던 쌀에 모두 벌레가 나서,

수녀님은 그 쌀로 모두 떡을 뽑기로 했다는 거다.

가래떡과 떡볶이 떡을 뽑는다는 바람에

막내인 꾀보 미영이도 한자리 차지하고 벌레잡이에

열중이었다.

하긴 말만한 언니들 등살에 꾀 부렸다간 국물도 없을 게다.

 

아이들이 얼큰 칼칼한 수제비가 먹고 싶다기에,

밀가루 반죽을 하는데,  등뒤에선 여전히 귀를 찢는 소음이

들려온다.

"으악 징그러! 우리가 이런 쌀을 먹은 거야?"

"야, 뭘 그야단이야? 단백질 먹은 건데..."

"난 젓깔로 잡을 거야. 손으론 징그러서 못하겠어"

"엄머, 얘는 왜 벌레를 난도질하니?"

"난 안죽일 거야. 하느님이 이 벌레에게도 생명을 주셨는데,

살려둬야 하지 않을까?" 

"야, 음악 좀 틀어 놔."

"이모, 벌레가 쌀 먹고 똥도 싸나요?

"이 벌레 사진 찍어줬으면 좋겠다."

.......................................

참말이지 끝도 없이 떠든다.

사회복지사는 아이들 떠드는 소리에 지친 표정인데,

난 어찌나 재밌는지, 일일이 대답을 하고 참견을 해주었다. 

 

언제나, '기차 화통 삶아먹은 소리'를 질러대는

길순이가 나를 부른다,

"이모, 칠판 보세요."

그 소리에 칠판을 쳐다보니,

<이모 음식 너무 맛있어요>라고 붉은 글씨로

쓰여 있다.

누가 써놨냐고 물으니, 길순이는 모두가 쓴 거라고 한다.

모두가 맛있어 하니까. 

음식을 만들 때, 아이들이 맛나게 잘 먹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아이들이 기쁘게 잘 먹어주니

고맙기 그지 없다.

 

아이들이 얼큰 수제비를 그렇게 좋아하는줄 몰랏다.

큰 냄비에 그득 끓인 수제비는 금세 바닥이 났고,

아이들은 입맛을 다시며 더 먹고 싶어 안달이었다.

어디 나갔다 늦게 온 현정이는 수제비를 못 먹었다고,

"아이고, 아이고..." 하며

온 집안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댄다.

다음엔 냄비에 찰찰 넘치게 끓여주어야 할 듯.

 

수제비를 두 그릇이나 비운 길순이는,

"이모, 저 낼 부터 중간 고사예요.

시험 잘 보게 기도해 주세요."한다.

아이들이 먹어댄  수북한  그릇들을

설겆이 당번 옥향이는 순식간에 깨끗히 해치운다.

설겆이엔 도가 튼 듯, 잽싼 손길이 여간 야문 게 아니다.

 

애들이 어찌 그리 이쁜지.....

나는 늘 함께 생활 하는 게 아니라서 그런 건지 모르지만,

정말이지 말같이 활기차고 귀여운 망나니들이다.

 

한가지 이상한 현상은, 내가 피로를 모르며 일 한다는  것.

본디 허리가 약한 나는 서있는 일을 오래하지 못한다.

걷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데, 서서 작업하는 건 허리가

아파 오래 하지 못하는 편이다.

한데 이곳에선 도무지 그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아이들의 기가 나를 활기차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수도회를 세우신 돈보스코 성인께서

내게 힘을 주시는 걸까?

청소년들을 특히 사랑하셨다는 성인이니,

그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나를  성인께서

지켜주시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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