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창가의 토토

tlsdkssk 2005. 10. 2. 07:24

지난 목요일, 일터의 미영에게

가장 인상깊게 읽은 동화가

뭐냐고 물어보았다.

미영이는 제법 독서량이 많은 5학년 아이다.

미영인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창가의 토토>란다.

그 책이 마침 그곳에 있길래 빌려왔다.

한데 책장을 넘기기도 전에 제목에 빨려들며

수많은 연상작용부터 일어나질 않는가.

 

창가의 토토라,

나는 금세 '토토'란 이름에 나를 대입해 보았다.

'창가의 애나'

참 그럴듯 하게 들린다. 

평소 나도 창가와  얼마나 친숙했던가.

특히나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선

얼마나 더 창가를 좋아했느냔 말이다. 

나는 우리집 창가에 앉아 남미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보카>까지

가서 탱고를 추지 않았던가.

 

토토는 나처럼 창가를 좋아하는 애일까?

그래서 날이면 날마다 창가에서

나처럼 헛 것을 보는 애일까?

나는 우선 그런 궁금증부터 들었다.

 

웬만한 소설 한권 분량쯤 되는 그 장편 동화는

주인공이 입학한 도모에 학원(일종의 대안학교)에서

벌어지는 수십편의 에피소드로 구성이 되어 있다.

 

전철역을 나오며 개찰구에서 벌이는 토토와 엄마의 대화.

그 첫 장면을 읽는 순간,

나는 그만 토토에게  매료당하고 말았다.

전철표가 갖고 싶어, 이담에 전철표 파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토토.

본디는 스파이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한 순간 토토의 꿈이 바뀌는 모습을 보며,

나도 곧장 어린 시절 내게로 돌아갔다.  

 

다섯살 무렵, 나는 문화캐러멜 곽 포장에 나오는

머리 긴 소녀가 되고 싶었지.

세상에 그애처럼 이쁜 소녀는 없을 것 같아,

늘 캐러멜을 사먹으며 그 소녀를 꿈꾸었다.

당시 내 머리 모양은 내 의사와 상관 없이

늘 짧은 단발이었다.  

그러다가 나의 꿈은 간호사, 배우, 수녀, 정원이 넓은 집

백장미(꼭 백장미여야 했다) 넝쿨 아래서

남편과 예쁜 식사를 하는 여자 등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다시 토토로 돌아가보자.

토토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퇴학을 당한 문제 소녀이다.

토토로 인해  담임은 도무지 수업을 진행 할 수 없어,

최종 단안을 내린 것이다.

결국 토토는 <도모에 학원>이라는,

요즘말로  대안 학교를 찾게 되는데, 

인생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증명하듯,

퇴학생 토토의 구원이 그곳에서 펼쳐진다.

전교생이 50명 밖에 되지 않는 그 작은 학교는

콩크리트 기둥의 교문 대신, 잎새 달린 나무 두그루가

교문을 대신하고 있다.

 

교실 건물은 이제껏 보았던

질서정연한 교실이 아닌,

전철 여섯냥이 그들의 배움터였다.

참으로기발한 아이디어 아닌가.

어떤 아이가 그런 교실을 싫어할 수 있을까.

공부가 놀이같이 여겨질 텐데...

 

토토는 거기서 고바야시 교장 선생을

만나게 되는데, 나는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까지,  

고바야시 선생이  안겨주는

감동을 주체할 길 없었다.

헬렌켈러를 떠올릴 때,

설리번 선생을 잊을 수 없듯,

토토를 성장시킨 고바야시란 인물에 대해

시종 감동과 감탄을 놓을 수 없었다.

 

이 이야기가  픽션이라 할지라도 그러할 진대,

알고보니 <창가의 토토>는 작가가 자신의 유년시절

체험담을 쓴 거라고 하질 않는가.  

고바야시 선생은 토토에게 늘 이런말을 들려준다.

"넌, 정말은 착한 아이란다."

도모에 학원은 1937년에 건립하여, 1945년 전쟁통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고바야시 교장은 자신의  모든걸 바쳐 이룩한 학교가

불에 타는 걸 보며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얘야, 이번엔 무슨 학교를 만들까?"   

그 대목을 읽는 순간, 내 눈가엔 이슬이 맺혔다. 

어떻게 이럴 수가?

그건 가히 '진한 감동'을 넘어선

'충격적 감동'이었다.

 

* *

미영에게 감사한다.

나도 그 애에게

"너도 실은 좋은 애야"하며

수없이 반복하여 말 해주고 싶다.

내 일터의 모든 애들이,

특히 문제아 미영이가 토토처럼

자랄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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