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시작한지 근 한달 째.
처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나날의 일상이 즐겁다.
어제는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뤘지만,
오늘은 파견 근무 나온 봉사자와,
사회복지사 애인인 k씨가 와 있었다.
k씨는 35세 사업가인데, 부친의 사업을 이어받기 싫어
일이 한가하면 땡땡이 쳐서 애인 일터로 와
일을 도와주는 것 같다.(感으로 느낀 것)
그는 사무 보조도 해주고,
수녀님을 도와 장도 봐오고 하는데,
그가 오면 일단 배꼽 잡을 준비부터 해야할 만큼
쾌활한 젊은이다.
나를 보자 그가 말을 걸었다.
"옆집 감나무에 감이 엄청 달렸는대요,
여기 울타리로 넘어온 건 여기 애들이 거의 따먹었어요."
나는 무심코 말을 받았다.
"어어, 그러면 도둑 아닌가요?"
그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밖으로 나가더니,
잘 읶은 연시감 2개를 따들고 왔다.
한데 그 맛이 정말 꿀맛이다.
나무에서 자연스레 연시가 된 거라, 시중 감 맛이랑
비교가 안되었다.
수녀님도 복지사도, 봉사자도, k씨도
졸지에 감칠을 하고
환상적 감 맛에 대해 한마디씩 했다.
나: "가서 빨리 더 따오세요."
수녀님:" 전 넘 맛있어서 껍질도 안 남겼습니다."
복지사:"이럴 줄 알았으면 옆집 할머니와 친해 두는 건데..."
k: "아니, 아까는 절더러 뭐라고 하시더니..."
나:" 나는 옆집에 노인네가 사시는 줄 몰랐지요.
노인들 감 많이 잡수면 변비 걸려요.
그러니 우리가 도와드려야 합니다."
(모두들 ㅋㅋㅋ ㅎㅎㅎ)
k:"근데요, 그 집 울타리 쪽에 달린 감은
엄청 더 커요. 정말 커요."
나: 그럼 내일은 그걸 꼭 따오세요.
수녀님: "감 따려면 장대 같은 게 있어야 해요".
이리하여 우리는 졸지에 감 서리 묘안을 짜내기에 바빴다.
사무국장 수녀님은 까다로운 듯 하시면서도
엄청 재밌는 분이다.
오늘은 칠판에,
<생선 안 먹은 사람 모두 용돈 삭감>이라고 써놓으셨다.
목동 성당 교우가 고등어 졸임을 한 통 해왔는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아이들이 아무도 안 먹었다는 거다.
그 수녀님이 점점 더 좋아진다.
첫날 뵈었을 땐 꼭 다문 입술과 부리부리한 눈이
무섭게 보여, 속으로
'저 수녀님과는 왠지 잘 지내기가 어렵겠는 걸....'
했는데 말이다.
'내 마음 한자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연샘니임~ (0) | 2005.10.06 |
---|---|
물이 좋군 (0) | 2005.10.06 |
주님, 창 밖엔 비가... (0) | 2005.10.04 |
쌀 벌레 잡는 공장 (0) | 2005.10.03 |
창가의 토토 (0) | 2005.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