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쯤 전 일이다.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9월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졸지에 수백명 소년들이 드글거리는
소년감별소 강당 무대에 세워졌다.
당시 나는 약간의 급여를 받으며, 재소자들을 위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인가, 소년감별소를 방문하게 되었다.
한데 소장이 예정에도 없는 기도를 부탁하는게 아닌가.
아이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도록 기도를 해달라는 것이다.
뜬금없이 심금을 을리라니, 내가 뭐 도깨비 방망이인가?
난 본디 수줍음이 많고, 무대공포증이 있는지라 기겁을 했다.
한데 사회자는 내 의사를 들어보기도 전에,
"자 그럼 이제부터 ***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를 해주시겠습니다." 한다.
순간 하늘이 노랗고, 가슴 뛰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오는 듯 했다.
수백의 눈동자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데,
못하겠다 도망 갈 수도 없어
나는 벌벌 떨며 강단으로 올라갔다.
일단 강당에 빼곡한 아이들 부터 둘러 보았다.
마침 창밖엔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에라, 모르겠다, 기왕 올라왔으니,
무우라도 썰고 내려가야지.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기도를 잘하려고 힘쓰지 말자.
걍 나오는대로, 느껴지는대로 하자.
그래서 이렇게 운을 떼었다.
"주님, 지금 창 밖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날엔 따듯한 방안이 더욱 그리워 지지요.
여기 모여 있는 아이들 역시 집 생각하기 딱 좋은 날입니다....."
한데 이게 웬일?
아이들이 흑흑 울지를 않는가.
여기저기서 훌쩍 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애들이 우니, 나도 전염이 되어 눈물이 나왔다.
결국 눈물의 기도가 되었다.
내 나이 30대적의 일로, 나는 만 3년 그 일에 몸담았다.
40대엔 7년간 정신과 환자들과 어울리며 일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결손가정 소녀들과 매일 만난다.
나는 할머니가 되어도 이 일을 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결손가정 청소년들도 만나고 싶다.
난 여자보다 남자와 더 친하게 잘 지내니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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