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주말에 등산 가서 구르는 바람에
멍이 몇 군데 생겼다.
오른팔에 생긴 멍은 첨엔 메추리알만한 아담한 크기였다.
색깔도 이쁜 핑크색이어서 루즈를 문질러 놓은 것 같았다.
한데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되자
멍이 점점 번지며 계란만해지더니,
가지를 짓이겨 놓은 듯 보라빛으로 물들어 온다.
다행이 팔이 아프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산에서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구르긴 했지만,
근처에 있던 흑기사가 잽싸게 도와 준 바람에,
좀 더 구를 내 몸이 멈춰버려 그만한 건지도 모른다.
이 시커먼 멍이 얼굴에 생겼으면 어쩔 뻔 했으랴,
하고 생각을 돌리면, 팔에 있는 멍이 고맙기조차 하다.
이제 멍이 탈색되어 가고 있다.
보라빛이 사위고, 자주 빛이 드러나며, 어느 부위는
치자 물 발라 놓은 듯 누렇기도 하다.
멍은 일주일 여 내게 심심풀이 구경감이 되어주었다.
칙칙하지만, 보라빛의 오묘한 조화.
마치 내 몸속에 누군가 숨어 있어,
붓으로 물감을 풀어 놓은 것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멍의 빛깔을 보는 게 한편으론 재미있기도 했다.
멍이 생겼음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표이며,
멍이 사라짐 역시도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잘 거거라, 멍. 그 동안 애 많이 썼다."
자판을 두들기다 말고 내 멍을 한 번 보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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