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에 갔더니 신부님이 성당에 '우는 방'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통성 기도를 좋아하는 신자들이나, 개신교를 다니다 개종한 분들은,
침묵 중에 조용히 기도하는 천주교식 기도가 성에 차지 않아 나름의 갑갑증을 호소한다나.
본당 신부님은, 신자들이 하느님께 항의하고,울고불고 하는 소리가 밖에 들리지 않도록
특별히 방음에 신경을 쓰시겠단다.
'통성기도실', '통곡의 방' 등 몇가지 이름을 생각했으나,
영어로 표기하기로 결정. 이름하여 Crying Room이다.
나는 피식 웃었다.
나같은 사람은 그런 방이 열개가 있어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속담에 '하던 짓도 멍석 펴 놓으면 안한다'는 말이 있는데,
울고 싶다가도 정작 그런 방에 들어가면 울음이 쑥 들어갈 것만 같다.
홀로 울고 있는데, 누군가 들어온다면 민망감으로 인해 내 눈물은 그 순도를 잃고 말테지.
언제 누가 들어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눈물은 커녕, 콧물도 마를 테지.
그곳에서 필요한 존재는 오직 하느님 한 분이어야 한다.
절대의 고독과 슬픔과 절망을 안고 왔는데, 누군가 얼씬거린다면 얼마나 김새는 일이겠는가.
인간이란 절대 고독 속에서만이 절대 자유롭지 않느냔 말이다.
크라잉 룸.
내게도 그런 방이 있었다.
1993년인지 1994년인지 기억은 희미하나, 대략 그 무렵이었을 게다.
생활고로 인해 삶에 대한 절망과 불안과 슬픔만이 그득하던 시절,
여문 봉선화씨방처럼, 누군가 나를 살짝 건드리기만 하여도
나는 금세 터질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눈가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맺히고 흘렀으며,아무리 노력해도 자제되지 않았다.
나는 밥을 먹다말고도 눈물이 흘러내려 화장실로 들어가 몰래 울었다.
때로 울음이 북받치면 세탁실에 들어가 수도를 틀어 놓고 울기도 했다.
세탁실은 최상의 크라잉 룸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식구들이 나가기만을 기다려, 마음 놓고 흐느껴 울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엉엉 소리내어 울어 보니 기분이 어찌나 상쾌하던지, 그 날 이후
내 울음 소리는 점차 다양하고 커져만 갔다.
세탁실로 쓰이던 작은 공간은 창이라곤 없어 문을 닫으면 칠흙같은 어둠만이 나를 감쌌다.
그 밀실은 이따금 관속이나 땅속 같은 착각마저 느끼게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암흑 속에서 느껴지는 건 오직 울음 소리와 들썩이는 자신의 가슴 뿐.
육안으로 자신을 볼 수 없어선지 나란 존재가 좀더 밀착되게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론 제3자처럼
생뚱맞게 다가오기도 했다. 거기서 나는 종종 1인 2역을 하였다.
"자, 맘 놓고 울어. 집엔 아무도 없으니까."
나는 나를 향해 이렇게 소리 내어 말했다.
내가 맘놓고 울지 못할 땐, "바보야, 그냥 소리내어 울라구." 하며 채근하기도 했다.
세탁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빨래를 하고, 나는 소리 내어 울며 슬픔을 씻어 내렸다.
그렇게 달포가량 눈물을 쏟았더니, 한 동안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우리 성당의 크라잉 룸에서 많은 신도들이 편안히 울 수 있기를 기원한다.
눈물은 때로 우리의 구원이다.
열 마디 타인의 위로보다도 한바탕 내어 쏟는 울음이 가슴의 먹구름을 몰아내 준다.
신경 정신과 환자들 중엔 울고 싶어도 눈물이 안나온다는 환자들이 더러 있다.
그로고 보면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세상엔 우는 행복도 분명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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