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혜의 골방

[스크랩] 유치한 호기심

tlsdkssk 2005. 8. 27. 00:00
 

05년, 6월 3일




                                 유치한 호기심  



  주간지 가십 란에, 근래 재혼한 찰스 황태자 가사가 실려 있다. 남의 나라 왕자 에게 무슨 관심이 있을까만, ‘신혼여행 중 찰스 도피’라는 머리글자에는 그만 유치한 호기심이 바스락 거렸다.

 

 불운한 왕자의 상대는 ‘카밀라’라는 이혼녀다.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던 찰스 황태자. 첫 아내였던 다이애너와는 사별로 끝이 났고, 공개적 애인이었던 카밀라와의 두 번째 결혼인데, 어째 행복하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오늘 같은 세상에 왕자와 왕세자비라니,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일까만, 그에게 황태자라는 금빛 나는 호칭을 떼어낸다 해도 멜로드라마적 장치가 넘쳐난다.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얘기보다는 아무래도 비극적 요소가 들어가야 드라마는 제 맛이 나는 법. 거기다 삼각관계라는 갈등까지 곁들여져 있었으니 세인의 구미를 당길 요소는 모두 갖춘 셈이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내용의 요지는 이렇다. 초호화 요트를 타고 신혼여행을 하던 중, 찰스는 카밀라의 잔소리를 못 견딘 나머지, 남자 수도자들만 있는 수도원으로 도피행각을 벌였다는 거다. 왕실의 한 소식통은 결혼 이후 카밀라가 찰스에게 지옥이 무언지를 보여주는 괴물로 변했다나. 그들의 신방에선 자주 큰 소리가 나고, 찰스는 측근에게 결혼 후회 발언도 했단다.

  

  두 사람은 평생의 연인이었다. 게다가 황혼의 결혼이니 쌍방간에 생각도 깊이 했을 터이고 서로 연민으로 감싸 안을 수 있는 연령이다. 한데 벌써 퀘퀘 묶은 부부 같이 싸움질이나 하고 있다니 암만 남의 얘기지만 재미를 넘어 은근히 짜증이 나려고 한다. 역시 사랑이란 별처럼 멀리서 반짝일 때나 영원의 그리움으로 남는 것인가.

  

  찰스를 향한 카밀라의 사랑이 클라이맥스에 이른 건 어쩌면 다이애너와의 결혼식이 거행되던 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연인이었던 자기를 버려두고 딴 여자를 아내로 맞은 찰스. 카밀라는 세기의 관심과 축복 속에 동화속의 왕자와 공주처럼 웃고 있는 찰스 부부를 극도의 슬픔과 질투 속에 지켜봤으리라. 그들의 행복을 빌었다면, 그건 허울일 테고 내밀한 진심은 행복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렇다고 왕세자비의 끔찍한 죽음까지 원하지는 않았을 게다. 다만 조금 불행하기를 바랐을 가능성이 많다. 그녀가 아주 끔찍한 악녀가 아니라면 말이다.

  

  소식통의 말대로 그녀가 찰스에게 지옥을 보여주고 있다면 그건 왜 일까. 곱지만은 않은 주변의 시선으로 인한 갱년기 여성의 스트레스 때문인가? 아니면 평생을 그리워한 남자를 정작 취하고 보니 환멸이 느껴져서? 아니면…….

  

  톨스토이의 <크로이첼 소나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진정한 인생에서는 한 명의 남자나 여자를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시하여 전념하는 마음은 기껏해야 1년 정도 지속되는 것이 고작이다.’

  그들은 톨스토이의 이 소설도 읽지 않은 것일까. 혹은 읽었다 해도 건성 넘긴 것일까. 

  

  하기야 삶이란 페이지를 다 넘기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이해되는 장편 소설과도 같다. 소설엔 독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반전도 끼어드니 섣부른 진단은 금물. 그렇긴 해도 사랑에 들뜬 세상의 연인들에게 이 대목을 한번쯤 꼭꼭 씹을 것을 권한다. 물론 콩나물시루에 물 빠져나가듯 흘려지고 말겠지만 그래도 김이나마 쐬지 않을까 싶어…….

                 





출처 : 유치한 호기심
글쓴이 : 순호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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