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천주교 묘지로 친정 아버지 성묘를 가면
성직자 묘지를 꼭 들러 오곤 한다.
그곳은 언제 가보아도 늘 한적하고 조용하여
쓸쓸하기조차 한다.
그 쓸쓸함이 주는 고즈넉한 평화가 좋아
우정 그곳을 찾기도 하지만,
그곳은 내가 무척 존경하던
레오 신부님(상도동 주임을 하셨던 )이
영면해 계시는 곳이기도 하다.
어제 친정 아버지 성묘를 마치고,
레오 신부님을 뵈러 갔더니,
그새 무덤들이 많이 늘어나 신부님 묘지를
단박에 찾을 수가 없었다.
반듯한 평지에 열을 지어 나란히 누워 있는
네모난 봉분들은 정갈하고 작은 초록 침대처럼 보여
무척이나 평안하게 다가왔다.
레오 신부님 자리는 앞줄 중앙 쯤이었는데,
영 낯선 신부님 묘석만 보인다.
그런데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이** (스테파노) 신부님이 그 곳에 영면해 계시지 않은가.
학자 신부임에도 신자들에겐 악명이 높았던 분이었다.
수 많은 교우들에게 상처를 주고(당신 또한 받았겠지),
내 남편과도 좋지 않은 추억을 남겼던 분이다.
그 여파가 내게까지 미쳐, 그 신부님은
내가 인사를 해도 고개를 외면하며 받아주시지 않았다.
몇 년 씩이나 그렇게....
그런 웬수(?)를 묘소에서 만난 것이다.
지난 5월, 주보를 통해 그 신부님의 선종 소식을
접하긴 했어도 용인에 와 계신줄은 몰랐다.
나는 초록 침대를 내려다 보며 신부님께 인사를 여쭈었다.
"신부님, 참 오랜 만이에요. 모든 것 훌훌 털고 평안을 누리소서."
신부님 무덤가엔 초라한 조화만이 몇 송이 꽂혀 있을 뿐이다.
준비해간 화분이 하나 밖에 없었기에 헌화는 할 수 없었지만,
대신 패랭이며 강아지 풀이며 웃자란 풀들을 뽑아 주었다.
평생을 주님과 신자들을 위해 몸받쳤지만,
외롭고 쓸쓸히 누워 계시는 신부님들을 둘러 보며,
그 이름들을 뇌어 보며 기도를 받쳐드렸다.
초록 침대에 누워 계신 이** 신부님도
어제만큼은 도리 없이 내 인사를 받으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