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황혼녘이었다.
며칠 전 부터 시작한 알바(겸 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곧 쓰러질 듯 몸이 피곤하다.
그도 그럴 게, 갈 때도 걸어가고(운동 삼아),
세 시간 동안 서서 일 하고,
올 때도 걸어 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걷는 시간만 왕복 1 시간 반이나 되니,
어제 나는 4시간 반을 꼬박 서서 수고한 셈이다.
물 한 컵을 마시며 베란다 의자에 앉아
멍하니 창 밖을 바라 보았다.
서산으로 해가 지는지,
건너편 동네가 단풍 들 듯 붉게 젖어오고 있었다.
어제 따라 노을이 불탔는지 황혼빛이 여느날보다 붉어 보였다.
그 정경은 참으로 이국적 이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언젠가도 말 했듯 아르헨티나의 어디쯤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스페인의 어디쯤이라고 해도 무슨 상관이랴.
내가 넋놓고 앉아 있을 때였다.
갑자기 건너편 수 많은 창들이 일제히 점등식을 하듯
오렌지 빛으로 빛나는 게 아닌가.
집들은 황혼 빛으로 물들고, 그 많은 창들엔
일제히 불이 켜지고...
그 반짝거림이 흡사 붉은 별이 빛나는 것 같았다.
어찌나 황홀하던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황혼 별(?)들은
잠시만 머물고 사라져 버렸다.
나는 아쉬운 눈길을 거둘 수 없었지만,
아름다움이란 그렇듯 순간에만 존재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건지 모른다.
불꺼진 창들을 바라보려는데,
허전한 내 맘을 달래기라도 하듯,
창문으로 바람이 마실을 왔다.
내 머리칼을 한 번 쓰윽 훑고는
풍경(風磬)을 울려준다
나는 그 바람이라도 잡고자 했으나
잠시 후 바람은 다른 볼일이 있다는 듯
내 곁을 떠나갔다.
아, 아름다운 것들은 이렇듯
잠시만 머무는구나.
허나 석양이 매양 그렇게 빛난다면
새삼 무슨 감동을 느꼈으랴.
바람이 매양 풍경을 울려준다면
무슨 그리움이 남아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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