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설합에 편지 한통이 그대로 잠자고 있다.
늦어도 어제까지는 들어갔어야 하는 편지인데,
그만 시효를 넘기고 말았다.
나는 하루에도 수차례 이메일을 주고 받는다.
게중엔 오랜만에 소식을 전하는 지인도 있고,
할말이 많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두세통씩 메일을 주고 받는 벗도 있다.
플래닛을 방문한 지인들이 댓글을 올려 놓으면
나는 그 즉시 답글을 올리기도 한다.
한데 써놓은지 열흘도 넘는 그 편지는
어쩌다 시효를 넘기고 만 것일까.
더구나 그 편지의 수신인은
내가 무척 좋아하고 존경하는
루로비코 신부님이시다.
그 신부님은 지난 날 내가 다니는 본당의
주임신부이셨지만,
중풍으로 쓰러지신 후에는 예산 사과 농장에서
요양을 하고 계신다.
내 삶이 몹시 힘들던 시절, 신부님은 내게 많은 도움과
위로를 베푸신 분이다.
나는 그 은혜를 못잊어, 해마다 한두차례는
신부님을 찾아 뵈었고,
일년에 두번 정도 문안 편지를 드리곤 했다.
한데 해가 갈수록 그 일이 여의치 않아진다.
물론 내 나름의 핑게 거리는 많다.
하지만 편지조차 제대로 못한다는 건
도무지 핑게를 댈 수 없는 일이다.
몸이야 못가뵙더라도, 편지 한장 쯤이야...
어제 8월 25일은 루도비코 영명축일 날이었다.
나는 신부님의 영명일을 축하해드리기 위해
열흘 전쯤에 편지 한통을 써두었다.
차일피일 하다가 날짜를 넘기고 만 건,
편지를 보내려하니, 편지 봉투가 없다.
우리 동네엔 문방구가 멀리 있어 봉투를 사려면
일삼아 밖엘 나가야 했다.
그러다 보니 또 하루가 지나고,
편지 봉투를 사 놓고 보니, 이번엔 우체국 갈 일이
번거롭게 여겨진다.
그러다 보니 또 이틀...
만약 그 신부님이 인터넷을 하셨다면
나는 분명 수없이 수없이 편지를 보냈을 거다.
오죽 드릴 말씀이 많은가.
세월의 변화에 인간관계 마저 변수가 생기는 것 같다.
사이버 상으로 만나는 벗들이라고 모두 가깝게 지내는 건
아니지만, 일단 컴~을 다룰 줄 모르는 지인과는
소통이 아무래도 멀어지는 것 같다.
그런 변화들이 안타까우면서도
내 몸과 맘이 이미 컴에 젖어 있으니
별 수 없는 일이다.
신부님, 참으로 지송함다.
이번엔 몸으로 가뵙겠습니다.
9월이 되면,
9월이 되면 꼭~~~~~~~~이요.
**
라고 나는 8월에 썼으나,
9월을 넘기고, 10월이 되도록
그 편지를 부치치 못하고 있다.
이 글을 되읽다가
10월8일 토욜에 몇자 덧붙여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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