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손님

tlsdkssk 2005. 8. 17. 10:45

".... 자신의 기분을 아이에게 발산하며 감정적으로 대했습니다....

이 외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해서도 통회하오니...."

 

나의 고백이 끝났을 때, 신부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식을  소유물로 보지 말고 귀한 손님처럼 대해 보세요."

신부님은 웬일로 '자녀란 하느님의 귀한 선물'이란

상투적 표현 대신 '손님'이란 다소 낯선 단어를 썼다.

 

나는 그 보속을 마음에 간직하고 고해소를 나왔다.

손님, 그렇지, 기분이 엿 같다가도 집에 손님이 오시면

나는 한껏 교양녀가 되어 매무새를 다듬었겠다.

아들넘을 손님으로 여길 순 없어도, 집안에 손님에 계시다고

생각하는 건 좀 수월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왜냐면, 신이란 아니 계신 곳 없는 무소부재한 분이시니까. 

 

좋다, 오늘 부터 일주일만이라도,

예수님을 손님으로 초대하자. 

이제 그 분은 일주일 동안 우리 집에 머무시며

내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 보신단 말씀이다.

 

난 그 분을 소파에 앉으시게 한 다음,  한껏 우아를 떨었다.

옷차림도 정갈하게, 집안도 청결하게, 가족에게도 상냥스럽게,

아들 넘 야단 칠 때도 나긋나긋...  

그 일주일 동안 집안은 반짝였고, 가정은 평안했다.

 

수 십년도 더 지난 일을 새삼 뇌이고 있는 건,

요즘 더위를 핑게로 내 생활이 넘 엉망이기 때문이다. 

옷차림은 반나체족, 머리는 산발 귀신, 청소는 거의 생략,

식사는 죽지 않을 만큼, 신문도 TV도 일체 안보고,

책도 안 보고, 오늘 할 일은 모두 다 내일로 미루고...

한 마디로 벌레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오소서, 예수 선생.

당신을 손님으로 초대합니다.

이제부터 대청소를 하려 하오니,

제 일이 다 끝난 다음 찾아오소서.  

일주일간 당신과 동고동락 하렵니다.   

'내 마음 한자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옥수수  (0) 2005.08.19
어머니의 기도  (0) 2005.08.19
이끼  (0) 2005.08.17
오늘도 걷는다마는  (0) 2005.08.16
어느 일본인에게(3)  (0) 2005.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