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나이로 유세부리는 인간

tlsdkssk 2005. 8. 11. 15:01

"내가 육십팔세요."

"내가 한국문인협회 시 분과 위원이며, 펜클럽..."

전화통에 대고 육십팔세 영감님이 열심히 설명을 한다.

그건 내가 듣고자 하는 말과는 전혀 상관 없는 대답이다.

난 그분의 연세를 묻지 않았다. 소속이 무어냐고도 묻지 않았다.

다만 본래 말했던 것과 조건이 다른 것에 대한

내 입장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건의 요지는 이러하다. 

한달쯤 전인가, 수필선집을 출판하려 하니

원고 두편만 보내달라는 편지를 받았다.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밝히며 좋은 책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요지였다.

요즘 출판계가 어렵다 보니, 작품을 보내주면 고맙겠다는

우편물이 이따금 날아든다. 한데 대부분 조건이 붙는다.

책을 사달라든지, 출판비를 협조해달라는...

 

물론 나는 그런 요구엔 응답을 하지 않는다.

내겐 그 많은 요구들을 다 들어줄 여유도 없거니와

그렇게까지 하면서  원고를 주고 싶은 맘은 전혀 없으니까.

이번에  보내온 편지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었다.

전화로도 몇번이나 간절한 부탁의 말을 해 왔다.

거절할 이유가 없어 원고 두 편을 보내주었다.

밤 늦도록 원고를 다시  보며  몇 군데 손도 보았다.

나로선 원고에 최선을 다 한 셈이다.

 

그 얼마 후인 어제, 다시 우편물이 날아왔다.

뜯어 보니, 원고를 잘 받았다는 것과,

책이 나오면 10권만 사달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 양반은, 미리 말하면 원고가 적게 들어올까봐

이런 방법을 쓰신 모양인데, 기분이 씁쓸했다.

 

글쓰는 사람이 봉인가? 

원고료도 없이 글을 보내주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이 양반은 자기 나이가 68세라는 것과

출판의 어려움만 계속 주장한다.(그럼 출판을 하지 말 일이지)  

나는 기왕 그렇게 된 것 10권은 부담스럽고

몇 권만 사겠노라 하였다.

 

그러자 그 양반, 불쾌감을 나타내며 전화를 뚝 끊는다.

화를 낼 사람은 나인데, 되레 그 쪽에서 화를 낸다.

68세 영감님, 당신만 어려움이 있는줄 아시는가.

어찌 당신은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시는가.

그리고 당신은 나이 든 게 무슨 자랑인 줄 아시는가?

나이란 아무 노력 없이도 누구나 때가 되면 절로 먹는다.

제발 부끄러움을 아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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