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대녀 A와 남대문 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그녀는 옷과 구두와 벨트와 목걸이등 다양한 쇼핑을 하고,
나는 디올 디자인을 본뜬 은반지를 하나 샀다.
물건의 다양함과 시장의 크기로야 동대문 시장을
따를 수 없지만, 남대문 시장은 인근에 신세계백화점과
명동을 두고 있어 소일하기엔 그만인 장소다.
백화점이 주는 쾌적함과 격조있는 인테리어도 좋지만,
삶의 생동감을 느끼기엔 뭐니뭐니 해도 재래시장이 좋다.
어린 시절, 나는 명동을 중점으로 그 인근을 돌며 살았다.
내가 살았던 동네인 충무로와 필동과 남산동은 모두가
명동과 가까워, 성당도 명동, 가족과 외식을 할 때도
명동으로 나갔다.
시장은 물론 남대문시장이다. 그러다보니 예나 지금이나
그 지역은 서울에서 가장 익숙하고 정감가는 장소의 하나다.
어제 보니, 남대문 상가의 상인들이 매우 친절해진 것 같다.
경쟁 사회에서 친절이란 또하나의 중요한 상술이겠지만,
예전엔 물건을 고르다가 맘에 드는 게 없어 돌아서면
욕을 바가지로 먹었고, 이에 항의하는 손님은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가제는 게편이란 말이 있듯, 상인들은 서로 협동심을
발휘하여 손님을 둘러 싸며 공포 분위기까지 안겨주기도 했다.
나는 그들이 무서워 섣불리 물건을 만져보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언젠가 한번 봉변 아닌 봉편을 당한 적이 있었다.
서른 살 때였나, 브라우스를 사려고 남대문에 나갔는데,
모두가 큰 것만 있어 맞는 게 없었다.
내가, 너무 큰 것만 있어 안되겠다고 말하자,
상인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아동복이나 사 입을 것이지..."
아동복이라니, 165센티의 여자가 아동복을 우찌 입으란 말인가.
당시의 상인들은 왜 그리 드세고 험악했는지 모르겠다.
한데 어제는 대녀가 물건을 고르다가 돌아서도
그들은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아니면 남대문도 드뎌 친절 작전을 배우기 시작한 걸까.
마지막으로 들른 갈치조림집 아줌마의 인심도 끝내준다.
"밥은 더 드셔도 돼요."
칼칼하게 지져낸 갈치 조림이 어찌나 맛나던지
(TV에 나왔던 집이란다), 나는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또 한그릇을 먹었다.
먹고 나니 배가 띵띵한 게 그지없이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으로 얼음에 재워 놓은 파인애플 한 조각(500냥 짜리와 1000냥 짜리가 있다)을
후식으로 먹고 나니, 기분이 짱이다.
남대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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