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수의 벗들이여,
며칠 집을 떠났다가 오늘 새벽에 돌아왔습니다.
서울을 떠나던 날,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비가 쏟아지더니,
서산 쯤에선 아예 앞을 볼수 없도록 거신 빗발이
앞을 가리더군요.
담양에 들러 대나무 테마파크를 산책한 후,
관방제림이란 곳을 가보았습니다.
자연풍이 가득한 제방 언덕에서
시골 스런 국수 한 그릇을 사먹고,
2남 1녀가 제방 길을 산책한 후,
순천 대녀네 집을향해 내려갔지요.
대녀의 가족들은 모두 서울에 와 있어
집은 오직 우리 세 사람을 위해 대기중이었습니다.
여행이란 일상으로 부터 철저히 벗어나는 것에
그 멋과 의미가 있는 줄로 압니다.
3박4일동안 나는 주부의 일상에서 철저히 벗어나,
밥하지 않고, 청소하지 않고, 오직 쉬고 먹으며
자연을 즐겼습니다.
밥순이인 내가 아침에 일어나 빵 두어 조각 먹고
등산을 했는가하면, 날이면 날마다 술타령(?)을 하며
밤을 보냈습니다.
순천 근방엔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사찰이면 사찰...
암튼 입맛대로 다 갖추고 있는지라,
여행의 재미가 더욱 쏠쏠했습니다.
남도가 소리의 고향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깊은 계곡을 찾아 들면
예서 제서 콸콸 흐르는 물소리에 아아. 으으으~~
구성진 소리가 들려오더군요.
길을 가다가 나는 아무데고 앉아
무심히 하늘을 바라보고,
작은 호수에 어린 숲 그림자를 바라보고
인적 드문 산에 올라 흙위에 벌렁 누워
하늘의 뭉게 구름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흙에 등을 대고 하늘을 바라보는게
왜 그리도 좋던지,
죽어 땅에 묻히면그 기분이 이러할까, 싶어지더군요.
마지막 날엔 선암사와 송광사를 다시 찾았습니다.
마침 예불 소리가 들려오기에
땡볕이 가득 쏟아지는 사찰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윽한 예불 소리에 마냥 취해 있었습니다.
법당 곳곳에서 들려 오는 예불 소리는
나름의 화음을 이루며 내 심혼을 그윽히 취하게 만들더군요.
예불 소리는 카톨릭에서 부르는 그레고리안 성가와
그 분위기가 너무도 흡사합니다.
서을로 돌아오던 어제 밤에는 마지막으로 전주를 들렀습니다.
동행인 ㅈ씨가 덕진못의 연밭과 음악분수를 보고 가자며
길을 서둘었지만, 공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음악 분수가
끝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밀림같이 울창하고 드넓은 연꽃에 탄성을 지르며
서운함을 대신하려는데, 이게 웬 일입니까.
앵콜 공연이라도 하듯 다시 분수가 물을 힘차게 뿜으며
영화 <스타워즈> 음악에 맞춰 춤을 추지 않겠어요.
마침내 분수의 공연이 끝났을 때,
나는 혼자 박수를 짝짝 쳐주었습니다.
ㅈ씨는 참으로 멋장이 입니다.
한여름밤의 꿈같은 덕진 못의 연향과 음악 분수를
선물해주었으니까요.
나는 지금 방바닥을 걸을 때도
발바닥이 욱신거려 다소 힘이 듭니다.
어제 송광사 게곡에서 발을 담그고 놀다 발이 시리면
바위나 돌밭을 거닐며 아이처럼 콩콩 뛰기도 했는데,
안 하던 짓을 했더니 발바닥이 놀란 모양입니다.
누군가 이런 나를 보았다면,다 늙은 어린이(?)가
주책을 떨고 있구나 했을지도 모른 일입니다.
실은 더한 주책도 떨았지만 그건 나만의 다이얼리에
몰래 기록해 두기로 하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