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르 쓰르 쓰르....
며칠 전 부터 쓰르라미가 운다.
일반 매미는 새벽부터 우는데 쓰르라미는
낮이 되어서야 목청을 다듬는가 보다.
어제 친정에 들러 엄마와 삼게탕을 먹고 있는데
엄마네집 창밖에서도 쓰르라미가 울고 있었다.
나는 닭을 뜯다 말고,
"엄마, 난 저 소리만 들으면 서글퍼져요."
했더니 엄마도 그렇단다.
모전여전인가, 아니면 다른 이들도 그런가?
맴맴맴맴, 쓰르 쓰르 쓰르 쓰르, 따따따따따(말 매미 소리, 하지만 이 소리가 아니다.) ~~~~~~~~~
온갖 매미들이 여름이 갈 새라 온몸으로 울어댄다.
그 작은 몸에서 놀랍도록 큰 소리를 낸다.
존재를 알리는 치열하고도 처절한 소리.
한데 왜 쓰르라미 소리만 유독 서글프게 들릴까.
"쓰르라미는 낮은 낭구(나무)에서 울고, 말매미는 높은 낭구에서 운단다."
어릴 적 골목 대장 노릇을 했다는 엄마는 매미 잡던 옛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엄마네 창 밖은 숲이 울창하건만,
매미들이 합창하면 새들은 잠시 쉬는지 찍 소리도 없다.
쓰르쓰르쓰르~~ 소리에 한참 취해 있다 보면
야릇한 최면현상까지 일어나는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멜로디로 연주되는 라벨의 <볼레로>가 주는
환각효과라고나 할까.
쓰르 쓰르 쓰르~~~ 하염없이 울다가 쓰아아아아~ 하며
소리가 잦아 든다. 그러다 잠시 간격을 두고 다시 울어댄다.
매미 울음 사이로 간간히 차 소리가 묻혀 왔지만,
쓰르라미 소리 때문인가 소음 속에서도 나는 어떤 정막을 느꼈다.
십여년 전 시골길에서 느꼈던 그 낯선 정적.
언젠가 시골길을 홀로 걷고 있을 때 였다.
하얀 뭉게 구름과 작열하는 태양,
훅훅 내뿜는 지열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인적 없고, 바람조차 자고 있는 그곳은 천지간에 나 홀로 인 듯한
고독과 적요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때 쓰르라미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그 소리가 적요를 깨뜨리긴 커녕 더한 적막감을 안겨주는 게 아닌가.
참 묘한 느낌이 들었다. 소리로 인해 적막감이 더해지다니...
쓰르라미 소리는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묘한 서글픔을 이르키며,
그 옛날 시골길에서 느꼈던 천지간에
나 홀로 있는 듯한 기분에 빠져들게 한다.
그 소리는 뭔가 서러우면서도 평안한 청량감을 안겨준다.
여름날 쓰르라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이 여름은 얼마나 더 무덥고 지겹고 시끄러울 것인가.
매미 없는 여름은 생각 할 수가 없고,
쓰르라미 없는 여름은 생각하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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