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돋보기를 걸친 이후론 책 한 권에 몰입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눈이 이내 실증을 내며 피로를 하소하는데 어찌 긴 독서를 할 수 있으랴.
이제 내 눈은 먼데 것만을 편히 보여주려 한다.
먼산, 먼 하늘, 먼 구름, 하늘의 별같은...
19C 후반 주네브 대학 철학 교수였던 앙리 프레데렉 아미엘이 기록한
<아미엘의 일기>는 그 내용의 심오함이나 문학적 향기도 뛰어나지만,
긴 독서가 어려운 내겐 참으로 귀한 마음의 양식이 되는 책이다.
살아 생전 한번도 학게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낸 외로운 삶을 일기를 통해 풀어 놓았다.
그의 일기는 그의 정신세계만큼이나 무겁고 부피가 있으나
일단 계속하여 읽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그리하여 아무 페이지나 들춰 읽어도 지장이 없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늘 그 책을 가까이 두게 한다.
잘 쓰여진 일기 문학의 미덕은 바로 그런 점에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는 출판을 목적으로 일기를 써나간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 고립된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제목의 일기를 읽었다.
'정치란 서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무조건 나와 같은 위치에
서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죽일 수 있다는 논리를 말한다.'
'진정한 인간일수록 인간에게서 고립된다....
뛰어난 성질은 인간을 고립시킨다. ..'는 대목에 밑줄을 그으며 읽어 내렸다.
몇줄을 읽다가 먼산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고나면
마치 그와 나란히 앉아 대화라도 나눈 듯 가슴이 젖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