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경섭이

tlsdkssk 2005. 7. 5. 14:58

"경섭아, 노~올자!"

유년의 곳간을 열어제치면

새벽마다 경섭이를 불러대던

내 목소리가 귓전을 간지른다.

경섭이는 내 최초의 보이프랜드이자

소꿉놀이 때마다 남편을 자처했던

첫 남성(?)이다.

5살 무렵의 충무로 거리는 이제라도 손에 잡힐 듯 눈앞에 선하다.

메리아스 공장을 하던 인숙이네와 엄마가 반무당이라고

소문이 났던 석우네 집, 레코드방과 아편쟁이 아발사가 있던 이발소,

조산부인과와 내가 다니던 강선영 무용소, 파출소에서 마주 보이던 골목길....

 

나보다 세살쯤 위인 석우는 곧잘 이상한 짓을 하여 내 속을 썼였지만,

경섭인 착하디 착한 내 친구였다.

한데 석우의 얼굴은 지금도 눈에 선한데, 경섭이의 얼굴은

웬일로 기억에 없다. 그저 경섭이란 이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새벽녘 선잠이 깨면 나는 하릴없이 다다미 방을 어슬렁 거리다,

밖으로 나와 충무로 거리를 이리저리 거닐며 경섭이네 집으로 갔다.

인숙이도, 승옥이도 있었건만 나는 늘 경섭이만 불러대었다.

경섭이, 너도 가끔은 충무로의 어린 연인을 회상할까?

아침마다   찾아와  이름을 불러대던 다섯살짜리

어린 소녀를 기억이나 할까. 

영원히 늙지 않는 내 유년의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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