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클래식 음악을 듣지 않았다. 들어도 소품 위주로 간단히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클래시카 티비를 보다가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게 되었다.
틈나는 대로 티비를 보기에 나는 그때그때 방송에서 해주는 곡들을 들었다. 처음부터 들은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초반의 연주는 지나치고 나머지만 듣는 경우가많았다.
그래도 이미 다져진 클래식에 대한 지식 때문에 아쉬운대로 감상을 할 수 있었다. 한데 음반이나 CD로 감상할 때와 달리 방송에서는 공연장에서도 볼 수 없는 장면들이 펼쳐지곤 했다. 악단들의 파트별 모습이나 지휘자의 앞 모습이나 얼굴 표정 같은 것이 선명히 잡혀 방송되었다.
그덕에 이름만 알고 있던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자세히 볼 수가 있었는데 그는 한 눈에 내 영혼을 사로잡고 말았다.
연주 곡에 대한 해석과 멜로디의 분위기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는 그의 표정을 바라보며 나는 얼빠진 듯 몰입하였다.
집에 있을 땐 아무 것도 안하고 아바도의 오케스트라 지휘만 바라보았다.
연도는 조금씩 달라도 그의 나이 60후반이나 70무렵의 모습으로 보였다.
오늘은 아침에 2004년에 연주 된 베토벤의 피아노 콘첼로 4번을 감상했다. 운이 좋아 1악장부터 들을 수 있어 황홀한 기분 마저 들었다.
그가 지휘하는 몸짓, 손 동작, 얼굴 표정엔 카리스마와 힘이 넘쳐 흐르고 인간이 얼굴로 지어낼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이 그의 얼굴에서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미처 모르고 있었는데(나는 막연히 그가 고령으로 살아 있으리라 여겼다) 그는 이미 2014년도에 하늘나라로 갔다.
그는 가고 없어도 그의 자취들은 여전히 보는 이들의 영혼을 흔들고 있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출생 | 1933년 6월 26일, 이탈리아 밀라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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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14년 1월 20일 |
경력 | • 1968~1986년 라 스칼라 극장 음악감독 • 1976~1987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 • 1982~1986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 객원 지휘자 • 1986~1991년 빈 국립 오페라 음악감독 • 1989~2002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및 음악감독 • 2003~2014년 루체른 페서티벌 음악감독 • 2004~2014년 오케스트라 모차르트 예술감독 |
유형 | 지휘자 |
수상 | • 1958년 쿠세비츠키 지휘 콩쿠르 우승 • 1963년 뉴욕 미트로풀로스 지휘 콩쿠르 우승 • 1992년 메리트 훈위 • 1994년 지멘스 음악상 • 레종 도뇌르 훈장 |
데뷔 | 1960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
요약 이탈리아의 지휘자. 20세기 최고의 거장 중 한 명이다. 빈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등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를 이끌었으며, 사려 깊고 민주적인 태도로 단원들의 신임을 받았다. 특히 말러에 대한 해석력이 탁월하다.
음악에 대한 열정의 발자취
누군가 클라우디오 아바도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일흔이 넘어서도 지치지 않고 그 많은 일을 다 해내는 비결이 뭔가요?” 아바도는 이렇게 말했다. “일이라뇨, 저는 제 열정을 따라갈 뿐입니다. 일곱 살 때부터 늘 그래왔는 걸요.”
20세기 최고의 마에스트로였던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평생 음악에 대한 열정을 따라 살았고, 그 열정은 7세부터 시작되었다. 1933년 6월 26일 이탈리아에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바도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접했지만, 음악의 진정한 즐거움을 느낀 건 일곱 살 무렵이었다. 음악가인 아버지의 동료들이 집에 와서 연주하는 실내악 연주를 듣다가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하모니에 매료되었고, 그때부터 음악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12세에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의 리허설 현장을 본 후 지휘자의 꿈을 꾼 아바도는 베르디 음악원에 진학했고 유럽 곳곳의 페스티벌과 마스터클래스를 다니며 유명한 지휘자들에게 레슨을 받았다. 이 시절 주빈 메타(Zubin Mehta)와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을 만나 마스터클래스를 함께 다니기도 했다.
1958년 쿠세비츠키 콩쿠르, 1963년 뉴욕 미트로풀로스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아바도는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에게 발탁되어 뉴욕 필의 부지휘자로 일했으며 이어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의 초청을 받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무대에서 빈 필하모닉을 이끌고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연주하면서 당당히 마에스트로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1968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로 취임한 후 에든버러와 루체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바도는 여러 음반을 남겼지만 말러 해석에 특별히 뛰어났다. 1976년 시카고 심포니와 〈교향곡 8번〉 을 녹음하며 시작된 말러 교향곡 녹음 프로젝트는 빈 필, 베를린 필 등과 호흡을 맞춰 19년 만인 1995년에 이르러 열 개에 걸친 말러 교향곡 전곡 녹음이 마무리되었다.
베를린 필과 만년의 여정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1990년 카라얀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의 수장이 되면서 그의 경력은 정점에 달했다. 로린 마젤(Lorin Maazel), 제임스 레바인(James Levine) 등을 제치고 최종 낙점된 아바도는 강력한 권위를 행사했던 카라얀과는 반대로 온화하고 개방적인 성품으로 단원들을 아울렀고, 지휘자의 손짓과 표정으로 단원들을 이끌어갔다.
한창 활동 중이던 시절 암 진단을 받은 아바도는 2002년 4월 베를린 필과의 고별 연주를 끝으로 베를린 필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암 투병 중에도 2003년 여름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일흔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다. 젊은 인재를 약성하기 위해 유럽 연합 청소년 관현악단, 구스타브 말러 청소년 관현악단을 창단하는 등 의욕적으로 이끌어가며 민주적인 지휘자를 표방했던 그는 2014년 1월 20일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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