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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눔에의 숭배, 북미원주민의 종교 - 김태숙

tlsdkssk 2017. 1. 1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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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에의 숭배, 북미 원주민의 종교 - 김태숙  

 

 


타인의 종교를 인정하는 유일신 숭배


흔히 북미원주민은 미신숭배자 혹은 우상숭배자라고 일컬어진다. 사실 전통적인 북미원주민 사회의 경우 성경이나 교회도 없고 특별한 예배일도 없다. 심지어 북미원주민은 태양을 향해 기도하고 곰을 숭배하기조차 한다. 문명인의 눈에 이는 당연히 한낱 미개인의 어리석은 행위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문명인의 시각에서 비롯된 오해와 편견에 불과하다. 북미원주민이 믿고 숭배하는 것은 태양이나 곰 같은 자연 현상이나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현상과 사물의 배후에 있는 초자연적인 힘이나 존재이다. 북미원주민에게 그 존재는 위대한 영(Great Oversoul), 즉 세상을 창조하고 주관하는 신으로 인식된다. 이 점은 북미원주민의 12계명의 첫번째 계명에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하나의 위대한 영만이 존재한다. 그분은 영원하며 전지전능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분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북미원주민이 믿는 위대한 영은 오로지 ‘하나’이고 ‘비가시적’이고 ‘전지전능’하며 ‘시공을 초월한 존재’로서 기술되어 있는데, 이는 보편적인 신의 개념에 정확히 일치한다. 그러므로 북미원주민의 종교는 미신이나 우상
의 종교가 아니라 일종의 유일신의 종교에 해당한다.


 

북미원주민은 자신의 종교를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이는 북미원주민의 종교가 유일신의 종교라는 점을 입증한다. 북미원주민에게 조물주는 하나이고, 모든 인간은 같은 신의 자손에 해당 된다. 따라서 타인의 종교를 부정하고 타인에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자신이 믿고 있는 신 외에 또 다른 유일신이 존재한다는 것, 바꿔 말하면 자신이 믿는 신이 유일신이 아니라는 말과 같다. 북미원주민에게 모든 종교는 동일한 신을 숭배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이런 점에서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같다. 만약 종교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신을 섬기는 방식의 차이다. 그러나 청교도 백인에게 이는 인정하기 어려운 사실이었던 것 같다.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한 백인 선교사가 세상에는 오로지 하나의 신만이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북미원주민에게 개종을 강요하자, 북미원주민의 추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북미 원주민들은 당신이 섬기는 신과 같은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단지 섬기는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위대한 영인 신이 세상을 만들었을 때, 우리가 서로 다른 종족이고 우리의 삶이 다르기 때문에, 그분은 북미원주민들에게는 신을 섬길 하나의 방식을, 그리고 백인들에게는 다른 방식을 주었습니다.” 북미원주민에게 신은 근본적으로 하나이고, 단지 섬기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북미 원주민은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북미원주민이 타인의 종교에 간섭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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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원주민들의 완전한 인간의 의미


신을 섬기는 방식의 차이는 예배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백인의 종교와 달리, 북미원주민의 종교에는 예배를 보도록 특별히 정해진 날이 없다. 왜냐하면 북미원주민은 매일 예배를 보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북미원주민이 주일날에 수레를 몰고 가자, 이를 본 선교사가 그 북미원주민을 심하게 질책했다. 그러자 그 의미를 파악한 북미원주민은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의 신은 일주일에 딱 한 번 오시는군요. 저의 신은 매일 매일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시는데 말입니다.” 북미원주민은 날마다 예배를 한다. 그것은 모든 북미원주민이 반드시 지켜야 될 의무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 음식을 먹을 때, 하루의 해가 질 때, 북미원주민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행위 하나 하나에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만약 감사할 것이 없다면, 그 잘못은 북미원주민 그 자신에게 있다.


 

북미원주민에게 가장 중요한 의무는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북미원주민은 강인한 육체를 만들고, 정신을 맑게 하고, 기도와 금식을 통해 위대한 영과 접촉하며, 가족과 이웃과 종족을 위해 봉사한다. 북미원주민의 문화가 물질적이지 않고 영적인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백인 문명사회에서 성공의 척도가 소유에 있다면, 북미원주민의 문화에서 성공은 소유의 분배, 즉 약자에 대한 봉사에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북미원주민이 사슴 한 마리를 잡을 경우, 그 사슴의 고기는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부, 고아, 병자, 노약자 등)에게 우선적으로 배분된다. 북미원주민은 물질적인 탐욕을 경계한다. 종족 중에 가난한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북미원주민이 많은 부를 소유하는 것은 수치이자 죄로 여겨진다. 그래서 전쟁이나 신의 축복에의해 필요 이상의 재물을 얻는 경우, 북미원주민은 포틀래치(겨울축제의 선물 분배 행사)나 축제를 통해 사람들에게 그 재물을 나눠준다. 왜냐하면 북미원주민 사회의 경우, 성공한 사람은 많이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많이 나눠주고 봉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북미원주민이 말하는 완전한 인간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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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종교이고 종교가 곧 삶


백인의 종교와 마찬가지로 북미원주민의 종교에도 영혼은 존재하며 영원불멸하다. 북미원주민은 내세가 있음을 믿는다. 그러나 백인의 종교와 달리 북미원주민의 종교에는 천국이나 지옥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이나 묘사가 없을 뿐만 아니라 북미원주민은 결코 죽음이나 내세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최선을 다해 현세를 살아왔다면, 그 결과에 의해 내세가 결정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북미원주민에게는 현세가 곧 내세이다. 북미원주민에게 중요한 것은 천국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완성하고 타인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북미원주민의 종교는 지혜와 실천의 종교이다. 북미원주민은 이웃을 사랑하고, 약자를 도우며, 종족을 위해 봉사한다. 북미원주민에게는 삶이 종교이고 종교가 곧 삶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북미원주민 사회에는 경전이나 사원이나 특정한 예배일이 없다. 북미원주민은 차이를 차별로 만들지 않는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늑대든 사슴이든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숭고하다. 북미원주민은 결코 자연을 착취하여 부를 쌓으려고 하지 않는다. 북미원주민은 필요한 만큼만 자연에서 가져온다. 생존을 위해 사슴 한 마리를 죽일 때에도 북미원주민은 사슴에게 용서의 기도를 올린다. “작은 형제여, 너를 죽여야만 해서 미안하다. 그러나 네 고기가 필요하단다. 내 아이들은 배가 고파 먹을 것을 달라고 울고 있단다. 작은 형제여, 용서해다오.” 한 마디로 북미원주민의 종교는 함께 사는 지혜를 실천하는 종교이다. 이것이 북미원주민 종교의 본질이다.

김태숙
mantskim@hanmail.net
경희대 영문학과 강사

 

 

 

 

출처 : 화타 윤경재
글쓴이 : 화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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