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 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오월(五月)-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진다.
바람은 넘실 천(千) 이랑 만(萬) 이랑
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빛 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 밤 너 어디로 가 버리련?
★ 작가소개
김영랑(金永郞,1903~1950) 본명은 윤식(允植).
전라남도 강진출생.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한학을 배우고 상경하여
휘문의숙에 입학했다. 3.1운동때에는 강진에서 거사하려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대구 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고를 겪었다.
일본에 건너가 아오야마 학원에서 수학했다.
박용철,정지용,변영로,신석정 등과 더불어 <시문학>지를 창간,
주재함으로써 1930년대 이땅의 서정시 운동을 본격화했다.
그는 시의 본도가 서정에 놓여져야 하며, 그것은 언어의
섬세한 조탁에 의해 미학적 수준으로 상승돼야 함을 강조하였다.
깨끗한 언어 감각과 예민한 감수성, 그리고 잘 다듬어진 시형에 의해
고독한 내면의 세계를 주로 노래했다. 1935년에 <영랑시집>을 간행했다.
일제 말기에는 창씨와 신사 참배를 거부했고,
광복 후에는 우익 민족 운동에 참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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