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상자

서경덕의 바람에 대한 시

tlsdkssk 2015. 9. 3. 13:23

金재상(安國)이 부채를 선물함에 감사하며

                                             

                                                        서경덕

 

 

묻노니 부채는 흔들면 바람이 생기는데

바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만일 부채에서 나온다고 한다면

부채 속에 언제부터 바람이 있었는가?

만일 부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필경 바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부채에서 나온다고 해도 말이 안 되고

부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 안 되네

만일 허(虛)에서 나온다고 한다면

저 부채 없이 허(虛)가 어떻게 스스로 바람을 만들어낸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고 보네

부채가 바람을 몰아칠 수는 있지만

부채가 바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로세

바람이 태허에서 쉬고 있을 때에는

고요하고 맑아서 아지랑이나 티끌 먼지가 일어나는 것조차 볼 수 없다네

하지만 부채를 흔들자마자 바람이 곧 몰아치네

바람은 기(氣)라네, 기(氣)는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해서

물이 계곡을 꽉 채워 조금의 틈도 없는 것과 같다네

저 바람이 고요하고 잠잠할 때는

그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기(氣)가 어찌 빈 적이 있으리오

老子가 '빈 것 같지만 다함이 없어서 움직일수록 더욱 나온다'고 한 것이 이것일세

그 부채를 흔들자마자 몰려가서는 기(氣)가 들끓어서 바람이 되네.

 

 

 

 

한 자의 맑은 바람을 초당에 보내오니

오동나무에 기대어 휘두르는 그 맛 별나게도 좋구려

뉘 알았으리오 똑같이 머리가 꿰어 있는 것을

천 가닥 가지가 스스로 펼쳐짐을 보는도다

물체에 밀린 기가 불어 몰려옴에

아무것도 없는 듯했던 빈 공간이 홀연 시원해지네

하지만 부채질로 먼지 일으킬 것 없이

대지팡이에 의지해 자연으로 가려네

 

 

 

 

누추한 집 좋은 집 가리지 않고

곳곳마다 맑은 바람 시원도 하네

덕은 조화로워서 만물을 도울 때 검은 것 흰 것 가리지 않으며

도는 위대하여 사람을 따라 합쳐졌다 펼쳐졌다하네

나는 무더위 쫓아낼 능력이 없어

부채에 의지해 서늘한 가을바람 끌어들일 뿐이라오

대장부라면 반드시 뭇백성들 더위를 씻어주어야 할 터이니

마땅히 나라 안 곳곳에 시원한 바람 퍼뜨려야 할 걸세

 

* 서경덕은 당시 재상이었던 김안국이 부채를 선물로 보내오자,

「김재상이 부채를 선물함에 감사하며」라는 제목 하에

  바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먼저 적고

  이어 두 편의 시를 썼다.

* 김교빈, 『기학의 모험 1』,  들녘, 2004. 94~97쪽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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