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상자

교외/박성룡

tlsdkssk 2015. 9. 3. 13:28

교외(郊外)

                          박성룡

 

 

무모(無毛)한 생활에선 이미 잊힌 지 오랜 들꽃이 많다.

더욱이 이렇게 숱한 풀벌레 울어 예는 서녘 벌에

한 알의 원숙한 과물(果物)과도 같은 붉은 낙일을 형벌처럼 등에 하고

홀로 바람의 외진 들길을 걸어 보면

이젠 자꾸만 모진 돌 틈에 비벼 피는 풀꽃들의 생각밖엔 없다.

멀리 멀리 흘러가는 구름 포기

그 구름 포기 하나 떠오름이 없다.

 

풋물 같은 것에라도 젖어 있어야 한다.

풀밭엔 꽃잎사귀,

과일 밭엔 나뭇잎들,

이젠 모든 것이 스스로의 무게로만 떨어져 오는

산과 들이 이렇게 무풍(無風)하고 보면

아, 그렇게 푸르기만 하던 하늘, 푸르기만 하던 바다, 그보다도 젊음이란 더욱 더 답답하던 것,

한 없이 더워 있다. 한없이 식어 가는

피 비린 종언(終焉)처럼

나는 오늘 하루

풋물 같은 것에라도 젖어 있어야 한다.

 

바람이여,

풀섶을 가던, 그리고 때로는 저기 북녘의 검은 산맥을 넘나들던 그 무형(無形)한 것이여,

너는 언제나 내가 이렇게 한낱 나뭇가지처럼 굳어 있을 땐

와 흔들며 애무했거니,

나의 그 풋풋한 것이여.

불어다오,

저 이름 없는 풀꽃들을 향한 나의 사랑이

아직은 이렇게 가시지 않았을 때

다시 한 번 불어 다오. 바람이여,

아,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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