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제발 간격과 거리를 유지하는 일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별로 신뢰하지 않기에 블로그로 친구 신청해오는 익명의 존재들에게 일체 답변을 안하는 편이다.
검증되지 않고 정체도 알 수 없는 이들과 대체 무슨 얘기를 한단 말인가.
설령 얘기를 했다고 한들 그게 무슨 대화가 되겠는가.
서로 코빼기도 보지 않고 손끝 으로 토닥인 얘기들에 무슨 진정성이 오갈 것인가.
오간다한들 그건 아주 표피적으로 끝나고 말 일 이리라.
사람과 사람 사이란 일단 얼굴부터 마주 보고 밥도 같이 먹으며 상대의 체취를 맡을 수 있을 때
마음이 열리고 상대에게 끌려들며 피차 자기를 열어보이게 마련이다.
몇 년 전 <선 수필>에 실린 내 글을 보고 매일 문자를 보내오는 화가가 있었다.
글을 너무나 감동적으로 읽었다기에 처음엔 간단히 감사의 인사를 날려주었다.
한데 그는 그날 이후 매일매일 문자를 보내왔고 뿐만 아니라 자기가 그린 그림도 보내오고 편지도 보내오고 사진도 보내왔다.
나는 그만 지겹고 질리고 느글거려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문자를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1년여 꾸준히 보내왔다. 무슨 특별한 내용이 담긴 건 많지 않고 대개는 이런 식이었다.
"햇살이 좋은 오후입니다. 차 한잔 하시며 머리를 시켜보세요."
그는 1년간 노래를 불러대도 아무 대꾸가 없자 자기가 보낸 그림을 되돌려달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러고는 잠깐 뜸을 들인 후 다시 문자질을 하는 거였다. 그러기를 서너달 여.
이쯤 되면 스토커 수준 아닌가.
어제 어느 블로거를 차단시켜 버렸다.
그에게 무슨 수상한 낌새가 보여 그런 건 아니었다.
아니 설령 그렇게 느껴졌다 해도 나는 그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고,
그가 자기 불로그를 방문해 달라고 요청해도 한 번 도 찾아가지 않았으니 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할 수 밖에 없다.
다만 매일 들러 인사하는 게 그리 유쾌하질 않았다.
때론 내가 새글 올리는 걸 계속 지켜보기라도 한 듯 연이어 새 댓글을 올리는 것도 신경 쓰였다.
존재와 존재 사이엔 거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은 물론 동식물에게도 이 원칙은 예외 없이 적용된다.
그래야 통풍도 되고 상대가 그리워지기도 하고 피차에게 너그러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나같이 독립적 성향이 강한 인간은 특히나 그 간격에 까다롭고 과민하다.
나는 이런 면에 있어서만큼은 거의 지랄스럽다할만큼 까탈스럽다.
상대가 내 털끝을 건드렸다고 생각되어질 때면 내 발톱은 여지없이 솟아나오려 한다.
그러니 익명의 존재들이여, 부디 무모한 환상을 거두어 가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