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혜 기자 = digitaljh@chosun.com)디지틀조선일보는 매주 1회 칼럼 및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풍부한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글 속에서 삶의 지혜와 인생의 용기, 치유의 힘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파리지앵처럼 살아보기
민 혜
사춘기 시절, 파리지앵을 동경한 적이 있었다. 이국 문화의 매력과 더불어 그네들의 정서에 공감이 가는 때문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얼굴의 생김새는 별 상관없는데, 개성 있고 감각적으로 옷을 입지 못하는 여자는 인기가 없다 한다. 남과 자기를 차별화하지 못하는 몰개성을 싫어하던 나는 그네들의 사고방식에 박수를 보냈다. 교복에 갇혀 자신을 표현할 수 없었던 여고생 적 일이었다.
오늘날 우리나라 여성들의 화장술이나 패션에 대한 감각은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미에 대한 집념도 놀라워서 젊은이고 늙은이고 성형에 대한 유혹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이다. 주변의 지인들만 해도 성형을 받은 측들이 제법 된다. 그럼에도 아직은 유행의 대세에 휘둘릴 뿐 자기만의 개성을 발휘하는 이들이 드문 것 같다. 동안(童顔)이니 V라인이니 하는 성형에 대한 선호도만 봐도 그렇다. 여성의 심미안은 놀랄 만치 세련돼 졌지만, 그 세련됨조차도 대개는 획일성을 쫒고 마는 것이다. 개성이란 단순히 남과 다르게 튀어 보이는 무엇이 아닌 자기만의 고유한 생활철학을 바탕으로 울어난 독특함이 아니겠는가.
이제는 그럴 능력도 기운도 없지만 한 시절 나는 손수 옷을 지어 입을 수 있었으면 할 때가 있었다. 남과 다른 나를 원하면서도 결국은 시장에 진열된 옷을 사 입어야 하는 데서 오는 한계 때문이었을 테다. 이따금 내가 원하는 옷이 보이긴 하지만 그건 형편에 맞지 않게 비싼 가격이었다. 그럴 때마다 동대문 시장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을 각양각색의 원단들을 떠올리며 상상 속에서 멋대로 옷을 지어 입곤 하였다.
어느 책을 보니 파리지앵이 되는 조건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싼 옷이라도 튀지 않게, 싼 옷이라도 고급스럽게 보이게.'
이쯤 되면 우리완 뭔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은가. 그 의식 속엔 부자와 빈자를 아울러 배려하는 인문학적 세련됨이 엿보인다고 하면 지나친 아부가 될까. 아무려나 일반적 우리라면 어림도 없을 얘기일 테다. 일껏 비싼 옷 사 놓고 튀지 않게라니, 상대가 미처 알아보지 못하면 자진신고를 해서라도 눈길을 끌어 모아야 본전 뽑는 일 아니겠나.
형편상 비싼 옷을 튀지 않게 입는 측엔 끼지 못하기에 나는 값싼 옷도 그럴싸하게 연출해내는 재주를 조금은 지닐 수 있기를 희망했다. 언젠가 모 잡지사의 행사 날에 참석했더니 어떤 이가 나를 보며 "파리에서 금방 날아오셨군요." 하였다. 그냥 건네 본 말이었을 수도 있었을 터나 하필 곁에 있던 한 여성까지 가세하여 평소 옷을 어디서 구입하느냐고 관심 있게 물어왔다.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날 내가 입은 것은 상하의에 구두까지 몽땅 다 합해 5만원이나 되었을까 한 '길 패션'을 개조해 입은 것뿐이었으니.
고가의 옷을 입고 나가 시선을 받을 때 쾌감을 느낀다면 저가의 옷을 입고 관심을 받을 때 또한 나름의 즐거움은 있는 법이다. 여기엔 비용 절감이 주는 남모를 고소함까지 뒤따른다. 한 푼 재산도 지니지 않고 통나무 속에서 살다 간 고대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경지가 못 될 바에는 이런 것도 괜찮은 장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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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앵처럼 살아보기
민 혜
사춘기 시절, 파리지앵을 동경한 적이 있었다. 이국 문화의 매력과 더불어 그네들의 정서에 공감이 가는 때문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얼굴의 생김새는 별 상관없는데, 개성 있고 감각적으로 옷을 입지 못하는 여자는 인기가 없다 한다. 남과 자기를 차별화하지 못하는 몰개성을 싫어하던 나는 그네들의 사고방식에 박수를 보냈다. 교복에 갇혀 자신을 표현할 수 없었던 여고생 적 일이었다.
이제는 그럴 능력도 기운도 없지만 한 시절 나는 손수 옷을 지어 입을 수 있었으면 할 때가 있었다. 남과 다른 나를 원하면서도 결국은 시장에 진열된 옷을 사 입어야 하는 데서 오는 한계 때문이었을 테다. 이따금 내가 원하는 옷이 보이긴 하지만 그건 형편에 맞지 않게 비싼 가격이었다. 그럴 때마다 동대문 시장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을 각양각색의 원단들을 떠올리며 상상 속에서 멋대로 옷을 지어 입곤 하였다.
어느 책을 보니 파리지앵이 되는 조건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싼 옷이라도 튀지 않게, 싼 옷이라도 고급스럽게 보이게.'
이쯤 되면 우리완 뭔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은가. 그 의식 속엔 부자와 빈자를 아울러 배려하는 인문학적 세련됨이 엿보인다고 하면 지나친 아부가 될까. 아무려나 일반적 우리라면 어림도 없을 얘기일 테다. 일껏 비싼 옷 사 놓고 튀지 않게라니, 상대가 미처 알아보지 못하면 자진신고를 해서라도 눈길을 끌어 모아야 본전 뽑는 일 아니겠나.
형편상 비싼 옷을 튀지 않게 입는 측엔 끼지 못하기에 나는 값싼 옷도 그럴싸하게 연출해내는 재주를 조금은 지닐 수 있기를 희망했다. 언젠가 모 잡지사의 행사 날에 참석했더니 어떤 이가 나를 보며 "파리에서 금방 날아오셨군요." 하였다. 그냥 건네 본 말이었을 수도 있었을 터나 하필 곁에 있던 한 여성까지 가세하여 평소 옷을 어디서 구입하느냐고 관심 있게 물어왔다.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날 내가 입은 것은 상하의에 구두까지 몽땅 다 합해 5만원이나 되었을까 한 '길 패션'을 개조해 입은 것뿐이었으니.
고가의 옷을 입고 나가 시선을 받을 때 쾌감을 느낀다면 저가의 옷을 입고 관심을 받을 때 또한 나름의 즐거움은 있는 법이다. 여기엔 비용 절감이 주는 남모를 고소함까지 뒤따른다. 한 푼 재산도 지니지 않고 통나무 속에서 살다 간 고대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경지가 못 될 바에는 이런 것도 괜찮은 장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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