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신발

tlsdkssk 2014. 9. 16. 10:09

제작년 여름인가, '다이소'에서 베이지 색 신발 한 켤레를 5000원 주고 샀다.  고무신이었다.

구멍이 술술 뚫려 보기에도 시원했고, 무지외반증 내 발을 언제나 편히 감싸주었기에 아무리 걸어도 발이 불편하지 않았다.

모양도 그런대로 괜찮았고, 어떤 옷을 입어도 튀지 않아 좋았다. 

나는 며칠 그 신발을 신어보곤 똑 같은 신발을 하나 더 샀다.

혹시라도 절품이 되거나 내 발 사이즈의 물건이 동나면 이 편한 신발을 다시는

못 신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웬만한 장소엔 언제나 그 신발만을 맨발로 신고 다녔다. 정장을 입어야 하는 장소가 아니면 늘 그 신발을 신고다닌 것이다.

물론 주일 미사 때도 거의 그 신발을 신었다.

한 교우는 우리집을 방문했다가 현관에 놓인 그 신발을 보고는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신발이 예쁘네요. 어디서 이런 예쁜 것만 사 신는 거예요?"

 

이틀 전이다. 자꾸 오른 쪽 신발 속에 모래 같은 게 들어 오는 것 같아 신발 바닥을 살피니 구멍이 뚫여 있지 않은가.

그야말로 신발이 뚫어지도록 신은 거였다.

이만큼 신었으니 이제 쓰레기 통에 내버린다 해도 아까울 것 없고 본전은 넘치도록 뽑은 셈이다.

한데도 버리기가 싫었다. 접착제로 뚫어지 곳을 떼워 계속 신고다닐 참이다.

물론 구멍 뚫린 여름 용 신발이라 이제는 신장에 넣어두어야 할테지만....

 

오늘 아침, 아래 실린 글을 읽었다.

내 신발은 우공은 아니지만 내가 가는 곳마다 곳곳을 누비며 살아왔다.

신은 듯 안 신은 듯 무게감도 없이 나로 하여금 발의 문제에서 해방시켜주었다.  

제 몸이 다 터지도록 내 발을 편히 지켜주었다.

이런 신발을 어찌 헌신짝 버리듯 버릴 것인가.

 

 

 

어느 초원을 누비던 우공(牛公)인가.
제 살과 장기를 모두 내주고
무두질한 수많은 길을 이끌고
내게 찾아온 것들.
그들을 코뚜레에 꿰어 야전으로,
도시의 아스팔트로 끌고 다녔다.
우렁우렁 깊은 눈,
슬픔도 잠시 말뚝에 매어두고
주인이 가고 싶은 곳으로 이끌려간 것들.
반항은 금물, 복종만이 그들이 살길이었다.
주인에게, 아니, 주인의 또 다른 상전에게
수없이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

- 최장순,  '신발' 중에서 -


'내 마음 한자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자 정식 주문 받다  (0) 2014.09.24
순대 정식  (0) 2014.09.23
모처럼 식탁에 앉아  (0) 2014.09.14
볶음밥 엄마  (0) 2014.09.12
아주 아주 잘 먹은 아침 식사  (0) 2014.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