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우 선생 살아계실 적의 얘기다.
사모님은 원주 시내 아파트에 거주하고, 초우 선생은 백운산에 멋진 산방을 짓고 글을 쓰며 자연을 즐기며
신선 놀음(?)을 하실 무렵이었다.
그분과 나는 늘, 때로는 매일 몇 차례씩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곤 하였다.
하루는 선생이 몹시 격앙된 메일을 보내오셨다.
메일의 내용은 사모님과 다투게 된 보고서였다. 부부싸움이야 어느 부부나 흔히 하는 거지만,
이번의 다툼은 그 정도가 심한 듯 느껴졌다.
나는 답신 메일을 보냈으나, 그분은 아직 분이 안 풀린 듯 결국 전화 통화를 하기에 이르렀다.
선생의 산방으로 주말에 아들네 가족이 오기로 했다.
부부는 따로 살지만 서로 독립생활을 하며 평화공존 하는 관계였다.
사모님은 매일 아침마다 출근하듯 차를 몰고 남편의 산방을 찾아와 머물다 가시곤 했다.
그분들은 개성이 워낙 달라 사모님은 당신 반찬과 밥을 따로 싸와 드실 정도였다.
그 날 아침 사모님은 초우선생에게 아들네가 오니 쌀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초우 선생은 아직 쌀이 많이 남아 있다고 응답.
사모님은 그 쌀은 묶은 쌀이니 새 쌀을 사야한다고 대꾸.
이에 초우 선생은,
늙은 에비도 묶은 쌀을 먹고 있는데, 아들 온다고 남은 쌀 두고 새삼 새 쌀을 사랴? 요즘이 못살고 못 먹던 옛시절이란 말인가. 한끼쯤 묵은 쌀밥 먹는다고 덧날 일 있나?
사모님은 역정을 내며,
아들에게 햇쌀밥 좀 해먹이기로서니 그게 무슨 대수라고 그러는가?
결국 두 사람이 한 치도 양보를 안하니 싸움은 크게 번지고 말았다.
초우 선생은 내게 솔로몬의 판결을 요구해오셨다.
나는 우선 웃음부터 터져나왔다. 이데올로기란 이런 거구나 싶은 것이.
그날 나는 황희 정승처럼 대답을 했다.
"제 생각엔요, 선생님 생각도 옳고 사모님도 옳으신 것 같아요. 모처럼 찾아오는 아들에게 햅쌀 밥을 해먹이고 싶은 건어머니의 상정일텐까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제가 여자라서인지는 모르지만, 가정사에 있어 죽고 살 만큼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면 남자들이 여성의 의견을 따라주는게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고요."
아들이 결혼할 무렵 내가 아들에게 해준 얘기도 그러했다.
"죽고 살 만큼 중대사가 아니라면 가급적 네 아내에게 양보하며 살아라."
내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남자였다 해도 그랫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