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땐 불란서 인형이 갖고 깊었는데 성인이 된 후론 파리지앵을 동경하곤 했다.
그것은 사대주의라기보다 그네들의 정서에 공감을 하는 때문일 테다.
프랑스에서는 못 생긴 여자는 괜찮은데, 개성있고 감각있게 옷을 입지 못하는 여자는 인기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남과 자기를 차별화하지 못하고 거리를 두지 않는 몰개성에 대한 그네들의 성토에 나도 한표를 던지고 싶은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여성들의 화장술이나 패션에 대한 감각은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여성들에게 여전히 결핍되고 문제되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세우는 일과 유행에 우루루 합류하는 문화라고 본다. 여성 대중의 심미안은 놀랄만치 세련돼 졌지만, 그 세련됨이 대개는 획일적이기에 결국은 몰개성해지고 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손수 옷을 지어 입을 수 있었으면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몰개성을 싫어하면서도 결국은 거리에 진열된 옷을 사 입어야 하는 데서 오는 한계 때문이었다. 이따금 내가 원하는 옷이 보이긴 하지만 그건 내 형편에 터무니 없게 비싼 가격이었다. 그럴 때마다 동대문 시장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을 각양각색의 원단들을 떠올리며 상상 속에서 옷을 지어 입곤 하였다.
어느 책을 보니 파리지앵이 되는 조건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싼 옷이라도 튀지 않게, 싼 옷도 고급스러워 보이게.
어떤가, 우리완 뭔가 달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가. 우리라면 어림도 없을 얘기. 일껏 비싼 옷 사 놓고 튀지 않게라니, 될법이나 한 소린가.
착각이 아니라면, 나는 비싼 옷을 튀지 않게 입는 측엔 끼지 못하지만 싼 옷도 고급스럽게 보이게 측엔 어느 정도 낀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E잡지사의 행사 날에 발행인 K선생은 나를 보더니,
"빠리에서 금방 날아오셨군요." 하였다.
A씨는 까페의 댓글에서 '의상구입은 어디서 하느냐'고 살짝 물었다.
회심의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날 내가 입은 옷값이란 위 아래 구두까지 다 합해봐야 5~6만원이나 되었을까.
비싼 옷을 입고 나가 남의 시선을 받을 때 쾌감을 느낀다면 싼 옷을 입고 시선을 받을 때의 쾌감은 더 큰 법이다. 그게 훨씬 남는 장사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