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닮은 꼴 찾기

tlsdkssk 2014. 5. 15. 07:28

어제 L선생과 테이트를 즐겼다.  나이도 나보다 한참 연상에, 서울대 영문과 졸업에, 전직 교사(수)에

시집살이 반듯하게 해내고, 부부 금슬 기막히고,  자식 잘 키워 성공 시키고, 적당한 재력까지 갖추고 해외를 드나드는 그녀는

나와는 도무지 닮은 게 없다.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는 같은 수필가라는 것.

그런 그녀가 무엇이 아쉬워서 작년부터 한번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다. 하지만 그런 제안이야 이런저런 분들에게 적지않이 들어 왔기에

립써비스려니 하고 무심히 넘겼다. 한데 그게 아니었는지 그녀는 이후에도 간간히 연락을 취해왔다.

너무 나이가 많거나 너무 깍뜻하거나 너무 학벌이 좋거나 너무 잘 살거나 하는 사람들이 만남을 청해오면

나는 적당한 핑게거리를 찾아 빠져나가기 일수였다.  

오래 전이긴 하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명문대 교수를 지낸 어떤 멋진 신사가 일산 호수 공원에서 만나자고 한 적이 있었다. 

미술 전공에 글도 잘 쓰고 피아노도 연주하는 멋쟁이였다. 내게 종종 이멜도 보내오고 자신이 써 놓은 작품도 보내오곤 했다.

한데 나는 응하지 않았다. 나이도 연상에다 무엇 하나 나와 공통점이 없는(이건 짐작이지만) 사람과 만나면 괜스레 불편하기나 할 것 같아서였다. 옷차림도 신경 써야 하고, 예의범절 깍듯에, 상대의 눈높이에 맞는 화제를 찾아 말을 건네야 하고, 혹시라도 밥을 먹게 되거나 차를 마실 때도 가급적 음식 먹는 소리를 죽여가며  우아함을 잃지 말아야 하고....그 생고생을 내가  무엇하러 사서 하느냔 말이다.

L 선생은 무엇이 아쉽다고 잊을만하면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문자 끝에 빨간 하트를 찍어 보내는것도 잊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내가 물었다.

"선생님, 저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인데, 저를 만나 무얼 하시려구요?" 

그러자, "민헤 선생과 있으면 아무 말을 안하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아서요. 왠지 그럴 것 같네요."

아무 말을 안해도 좋다? 나는 그 말에 그녀를 만나도 좋으리란 느낌이 들었다.

일전 내가 제의를 수락하자 그녀는 어린애처럼 좋아하며 약속 장소를 잡았다. 인사동 부근의 어느 호텔 식당에서 12시에 만나 점심부터 들자는 것이다.

그 날이 바로 어제였다. 그녀와 만난 곳은 찾는 이들이 많아 예약 없이는 식사를 할 수가 없다고 했는데 과연 손님들이 바글거리고 외국인들도 많이 보였다. 피자 파스타를 비롯한 이태리 식 뷔페였는데, 하나하나가 모두 내 입에 붙고 커피 맛도 각별히 좋앗다. 나는 식탐을 부리며 욕심껏 먹었고, 12시 이후엔 절대 커피를 마시지 않는 금기를 깨고 커피도 두 잔 반이나 마셨다. 순백 컬러의  커피잔 질감은 두툼하고 다소 무겁게 느껴졌다.

그녀가 말했다.

"사위를 만나면 우리 둘의 공통점이 22가지나 된다고 좋아하는데, 우리 사위(프랑스인이다)도 나처럼 두툼한 잔에 마시는 걸 좋아해요. 커피 맛이 다르지요."

나는 피식 웃으며 내 특유의 직설화법을 늘어 놓았다.

"ㅎㅎㅎ, 저는요 제가 특별히 관심 두는 것 외엔 아주 둔감해요. 커피 잔의 두께 같은 건 신경 써 본적이 없어요."

나도 집에 여러개의 머그가 있지만 그 중 가장 두께 얇은 잔만 골라 마시는 편이다.  원두커피가 있어도 내리기 귀찮아  봉지 커피나 마시는 위인이 어찌 무거운 잔을 손수 드는 수고를 할 것인가. 

대화가 이렇게 시작 됐기에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인문학적 지성이 넘치며 인성 바른 품위에 안도를 하고 남은 시간을 적당히 메울 생각이었다.

점심을 마친 우리는 인근 창덕궁(비원)으로 향했다. 전과 달리 시간제로 인원을 제한하지 않아  순번을 기다리지 않고 입장 할 수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숲을 지닌 궁이 있다는 건 얼마나 축복인가에 대해 이구동성 말하며 비원의 뜰을 거닐었다. 작약이 한창이라 작약 꽃을 보며 서로 감탄하다가, 그녀가 물었다.

"민혜씨, 스마트 폰 써요?"

"아뇨."

"아니, 왜?"

"제가 기계치라.."(그러나 시대에 뒤지는 미개인이 될까봐 머잖아 바꾸려 하는 중이다)

그러자 그녀가 반색을 한다.

"와~ 나도 그런데... 그럼 길은 잘 찾아요?"

"아뇨, 길치에요."

그녀가 또 묻는다.

"노래는 잘 해요? 춤은?"

"아뇨, 노래 못해서 남 앞에선 안해요. 몸치라 춤도 뭇춰요. 가무엔 젬병."

그녀는 한 손을 내밀며

"이럴 땐 서로 손을 마주 쳐야해요." 하며 웃는다.  

우리는 고궁을 거닐다 이따금 벤치에 앉아 남은 대화를 이어갔다.

닮은 꼴이 많이 찾아지다 보니 어느 덧 그녀와 나는 경계가 많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서로 정이라는 명분으로 경계를 모르는 인간들이 불편하다는 것에 공감했다. 

언제고 우린 또 오늘 같은 만남을 가질 것이다. 그 땐 또 나머지 닮은 꼴 찾기를 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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