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해피해피 핑크 로즈가 있는 풍경

tlsdkssk 2014. 4. 24. 06:48

튼실하고 큼직한 장미 한 송이를 화병에 꽂아 놓았다.

처음엔 현관 부근에 놓았다가 긴 줄기를 자른 후 다시 서가로 옮겼다.

꽃 빛깔은 진달래와 도화(桃花)를 믹스한 듯 화사한 분홍인데,  서가에 놓으니 온 방이 훤해진 듯 하다.

장미의 색감은 다양하지만 내가 유독 핑크로즈에 집착함은 그 유래가 깊다.

고등학교 다닐 시절 우리 집 마당에 있었던 한 포기의 장미가 바로 핑크로즈였던 것이다.

집안이 망해 다 허물어져가는 초가를(놀랍게도 당시의 서울 변두리 동네엔 초가가 있었다니까) 구입해 이사했을 때, 나를 위로한 것은 오직 그 한 포기에서 마악 피어난 한 송이의 핑크로즈였다.

꽃이라곤 단 한포기 장미 밖에 없었지만, 나는 그 알량한 마당을 장미정원이라 부르고 그 장미를 통해 위로 받으며 나 자신을 장미정원을 거느린 소녀라고 칭했던 것이다.

식탁이나 집안에 늘 장미가 있었으면 했다. 다발까지는 필요 없고 그저 한 송이면 족했다. 투명한 유리잔이나 작은 화병에 한 송이만 꽂아도 그 장미의 파장으로 실내를 '장미가 있는...'으로 로 승격 시켜주니까. 하지만 절화(折花)란 며칠 못가 시들게 마련이다. 

늘 시들지 않는 장미 한 송이를 꽂아 놓는 방법을 강구하다가 조화 한송이를 구입했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 조화도 생화 같고 따라서 생화도 조화 같을 때가 적지 않다. 장미는 옐로우, 레드, 오렌지 등이 있었지만 나는 핑크로즈를 택했다. 꽃대와 꽃송이가 어찌나 튼튼하고 탐스러운지 한송이만으로도 그 존재감이 충분히 느껴졌다.

장미는 내가 외출하고 들아올 때마다 방긋 미소를 보내준다.

장미는 언제나 튼실하고 언제나 해피해 보인다.

생명을 버렸기에 역설적으로 생명을 얻었다고나 할까. 

장미에게 이름도 지어주었다. '해피 로즈'가 그녀의 이름이다. 그랬다가 며칠 후 다시 개명을 해주었다.

'해피해피 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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