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사교적 언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달변에 미소 가득한 표정은 후렴처럼 따라붙는다.
한데 능란한 언어로 상대를 주물러대는 그들의 언어를 나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피차 친근한 사이엔 이런 언어의 치장이 굳이 필요하지 않으나, 어정쩡한 관계거나
이해관계가 얽힌 사이에선 이런 언어들이 외교사절처럼 곧잘 넘나든다.
상대방에 대한 칭찬으로 해서 자신이 상대를 얼마나 각별히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달콤한 언변 앞에서 목석처럼 대응하는 인간은 극히 드물 것이다.
상대의 말이 빈말임을 알면서도 그 말이 주는 사탕 맛에 일단은 입이 벌어지고 만다.
인간이란 자신의 잣대나 기준으로 상대의 말을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나는 쓸데없는 빈 말을 잘 늘어놓지 않는 편이다.
빈말을 전혀 안 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비교적 내 마음의 생각만 전달하는 것이다.
때문인지 순진한(?) 나는 사교적 언어를 날리는 사람들의 말에 곧잘 속아넘어가곤 했다.
머리가 좋은 상대일 수록 교묘한 언사로 말을 날려오기에 나는 그대로 믿어버리는 적이 많았다.
나에 대한 찬사에 대해선 덤덤히 넘기거나 한쪽 귀를 막아버릴 수 있었지만,
조만간 꼭 만나고싶다던가, 자기 집에 꼭 놀러오라던가, 특별한 시간을 함께 보내자던가 하는 식의 말들에 대해선
상대의 말을 존중해주고자 했다. 이들은 모두가 여성들이었다.
결과는?
하하, 번번히 뻥이었다.
상대의 그 말을 고히 간직하고, 크게 내키진 않지만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여 정작 내가 어렵사리 시간을 내려하면,
그들은 엉거주춤 뒷걸음질을 치곤 하는 거였다.
나는 그런 인간들을 몇 몇 알고 있다.
그들을 파악하고 난 뒤엔 나는 그들이 어떤 말을 해도 일단은 절반을 깎아내고 듣는다.
그리고 나 역시 필요한 만큼의 사교적 언어를 토해날 뿐 마음 가까이 그들에게 근접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이 무척 대인관계에 능란하고 사람을 잘 주무른다고 생각할 지 모르나,
천만의 말씀, 진실이 아닌 것은 생명이 없는 것, 생명 없는 것이 어찌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냔 말이다.
그들의 사교적 언어야 말로 사교를 저해하는 비사교적 언어라는 걸
그들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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