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를 듣는 중이다.
나비부인 중 <어떤 개인 날>을 듣다가 그예 눈시울을 적시고 만다.
나비부인의 애절한 선률과 쵸쵸상의 비극적인 사랑은 세월이 가도 내 눈물을 걷어갈 줄을 모른다.
기실 푸치니는 오페라의 본국 이태리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대신 그는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의 오페라가 난해한 메세지성이나 논리성이 아니라 바로 본성에 호소하는
직관적 즐거움의 친근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02년이었나, 대구에서 오페라 <나비 부인>을 관람한 적이 있었다.
공연 도중 자주 눈물을 흘렸으며 특히 <어떤 개인 날>이 나올 적엔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나비부인이 자결 하기 전 단장의 슬픔을 내토하며 부르는 아리아는 클라이막스의 비장미를 더하며
마침내 나를 눈물의 벼랑으로 끌어내렸다.
공연이 다 끝났을 때까지도 눈물이 그치질 않아 남편의 손수건 까지 적시며
객석이 텅 비기를 기다려 뒤늦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로비에는 사람들이 웅성거렸지만
아무도 나처럼 눈이 벌겋도록 울었던 관객은 없는 것 같았다.
공연 중 막간의 휴식 시간에도 눈물이 진정되질 않았으니
내가 좀 별나다면 그들은 좀 목석같다.
어떤 개인 날의 가사는 대략 다음과 같다.
그분은 떠나기 전에 말씀하셨어요.
오 버터 플라이, 귀엽고 자그마한 아가씨, 예쁜 저 새가 보금자리를 트는 계절에 돌아오겠소, 라고.
그분은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울기는 왜 울어. 의심하지 말아야지!
어떤 개인 날, 바다 저 멀리 연기 피어오르고 배가 나타나요.
희고 큰 배는 항구로 와서 예포를 쏘고...
보이지? 아, 그분이 왔어요. 나는 만나지 않을 테야. 언덕에서 기다리는 거예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 그런 기다림은 괴롭지가 않아요
그분은 언덕을 올라오며 뭐라고 말할까.
멀리서부터 "나비야"라고 부를 걸
나는 대답하지 않고 숨을 테야
그렇찮으면 반가워서 죽고 말테니까
그러면 그분이 다가와서 나를 부를테지
오렌지꽃같은 나의 아가씨라고....
떠나가 돌아오지 않는 연인 핑커튼을 기다라며 이렇게 읊조리는 쵸쵸상.
그러나 핑커튼은 쵸쵸상을 까맣게 잊은 채 미국 여자를 데리고 나타났으니.....
이런 노랫말에 그처럼 서정 넘치는 선율을 들으며 울지 않는 이들이 나는 한 없이 이상했다.
우리 나라에도 한국 전쟁 통에 적지 않은 나비부인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미군들은 키가 자그마하고 피부 노르끼리한 한국의 누이들을 품으며,
핑커튼이 쵸쵸상에게 하듯 그렇게 달콤하게 속삭였으리라.
나는 어린 시절, 소위 양공주라 불리우는 여인들이 미군들의 팔짱을 끼고
충무로 거리를 활보하는 광경을 아주 많아 보았다.
우리가 '깜둥이'라고 불렀던 흑인들은 한국 애인의 어깨를 감싸안고 흰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백인들은 키가 어찌나 큰지 양색시들이 젓봇대에 끌려다는 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푸치니의 오페라는 단연 라 보헴이다.
내게도 라 보헴 시절이 있지 않았는가.
20대, 이대 입구, 날개, 김자경 오페라단, 남창식의 라 쿰파르시타, 겨울나그네, 사직공원의 밤...
아, 흘러가버린 나의 지난 날들아,
그립고도 눈물겨운 지난 날들아, 눈물이 그치질 않는구나.
쵸쵸상과 푸치니가 나를 계속 울리는구나.
왜 그리 애절하고, 왜 그리 아름다운 것이냐.
푸치니는 라 보헴에서 미미가 죽는 장면을 작곡해놓고는
끝내는 울어버렸다고 했지.
애절해서 울고, 아름다워서 운다.
푸치니가 또 나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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